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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따르면, 고려에서 거세 풍습이 생긴 것은 몽골 간섭 이후
였다. 이때부터 고자들이 대거 양산되어 궁중 내시의 주류를 이루었
다. 이것은 고려 후기부터 고자들이 궁중 실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준다. 중국식 궁형제도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몽골 간섭 때부터 자발적 거세가 유행한 탓에 고자들의 대량 공급
과 조직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덕분에 이들은 고려 후기와 조선시
대에 궁중 실무를 장악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내시는 대개 다
제3기 내시다.
이처럼 한국사의 내시가 시기별로 3가지로 나뉜다면, TV 속의 내시도
당연히 그렇게 구분되어야 한다. 7세기까지를 다루는 사극에서는
고자형 내시가 등장하지 말아야 하고, 그 이후를 다루는 사극에서는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초상화(상상도)
고자형 내시가 등장해야 하고, 몽골 간섭 이후를 다루는 사극에서는
출처 :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중국어판
인위적 고자형 내시가 등장해야 한다. 따라서 서기 7세기 중반을
다루는 MBC 드라마 <계백>에서는 제1기 내시 즉 비( )고자형 내시가 등장해야 한다. 이성과 접촉할 수
있고 자녀도 낳을 수 있는 남자들이 내시로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제9회(8월 22일)와 제15회(9월 12
일)에서 다뤄진 백제 내시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제9회 때의 장면만 다시 살펴보자.
한 상인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의자 왕자(조재현 분)를 방문했다. 병사들에게 판매할 강장제를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상인은“아무리 지친 병사라도 이 약만 먹으면 벌떡 일어설 수 있다”
면서“믿지 못하겠거든
아무 병사한테나 시험적으로 먹여보라”
고 제안했다. 의자는 옆에 있는 내시에게 시식을 명령했다.
그러자 상인은 의아한 표정으로“내관입니까?”
라고 질문했다. 의자가“그럼, 네 눈엔 장군으로 보이느냐?”
고 되묻자, 상인은“이건 남자한테 좋은 건데”
라고 중얼거렸다. 이 장면은‘내시=고자’
라는 선입견에
입각한 것이다. 백제 때만 해도 고자형 내시가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다. 내시제도가 시대별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
사극이 점차 풍성해지고 있다. 사극 촬영에 거금이 투입되고 톱스타들도 투입되고 있다. 이 같은 양적
성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질적 성장이다. 질적 성장이란 좀더 철저한 고증을 거쳐 각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사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각각의 시대가 가진 문화적 특성을 세심하게 다루는
사극들이 TV를 점령해야만 시청자들은 보다 알차고 유익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소개
김 종 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동양사 전공 박사수료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한국사 인물통찰’강의 중
?오마이뉴스‘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연재 중
12 |
2011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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