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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 역사읽기
<무사백동수>
북벌정신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밑바탕을 흐르는 것은 북벌 정신이다. 청나라에 복수하고 병자호란의 치욕
을 갚자는 정신이 드라마의 저변을 지배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백동수(지창욱 분)를 비롯한 무사들은
효종 임금의 북벌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병자호란에서 패한 인조(효종의 아버지)는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에 있었던 삼전도 나루터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렸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산성일기>에 따르면, 인조 15년 1월 30일
(1637.2.24)에 인조는 천민들이 주로 입던 청의(
)를 입고 삼전도에 가서 9층 단상에 앉아 있는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
九叩
)를 올렸다. 총 3회 절을 하고,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총 9회 머리를 조아
리는 의식이었다. 진흙 바닥에서 절을 했으니 손과 옷이 얼마나 더러워졌을까.
이런 치욕을 경험했기에, 조선인들은 청나라를 증오했다. 개중에는 북벌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북벌론이 국가정책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론화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북벌의
대명사로 알려진 효종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효종이 딱 한번 북벌을 언급한 적은 있었다. 효종 10년
3월 11일(1659.4.2)의 일이었다. 서인당(이이?성혼의 추종세력)의 영수인 송시열과의 비공개 회담에서였다.
이 회담은 효종이 북벌을 추진했다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회담 내용을 살펴보면 이것이 과연
북벌론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효종-송시열 회담은 요즘 말로 하면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영수회담이었다. 당시 효종이 왕권강화를
목표로 추진하던 군비증강 때문에 임금과 서인당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었다. 서인당이 군비증강을
반대한 것은 그것이 부유층의 세금부담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인당은 효종을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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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_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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