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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1384년) 석왕사에서 이성계가 꿈에
곁에 있으면서 큰일이 있을때마다 많은
대한 풀이를 무학대사에게 물어보게
조언을 해주었다.
된다. “꿈에 만집의 닭이 한꺼번에 울어
77세에는 금강산의 진불암에 머물게
보이며, 천집의 다듬이 소리가 일시에
되고, 1405년 79세의 나이로 금강산
들렸습니다. 그리고 꽃이 지는 것도 보
금장암에서 입적하였다.
이고, 거울이 떨어지는 것도 보였습니다.
지금도 간월도는 무학대사와 관련된
또 허물어진 집에 들어가서 서까래 세 개를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무학대사가
지고 나오기도 했습니다.”라고 물어
이곳에서 불도에 전념하던중 달을 바라
보았다. 이를 듣고 대사는 이성계가 장차
보며 득도했다해서 그 후부터 간월암
왕이 될 인물이라고 말해준다.
)이라 불렸다고 한다. 간월도
1392년 왕사로 책봉된 후 계룡산 일대를
에서 나오는 어리굴젓은 이성계에게 진상
수도의 후보지를 살피기도 하였는데,
하였다고도 하며, 간월도 어리굴젓 상표
1394년 한양의 지세를 살피던 중 삼각산,
중에 무학표도 이런 이유에서 붙은 것이
인왕산, 남산의 지세를 보고 한양을
라고 생각된다. 고려말 조선초기의 격동기
새 도읍지로 정하였다. 이는 풍수지리
를 살다간 무학대사는 조선건국과 관련된
적인 입지에 의해 조선초기에 기틀을
태조와 많은 연관을 맺고 있었던 선사
잡은 큰 일이었다. 이후에도 태조 이성계의
중의 한분이다.
(부석면 간월도리의 간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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