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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향우회 회원 특별기고 |
좋은
곳에서
왔구나
아산의 이미지‥
강태혁
한국은행 감사
이제는 아스라한 옛 기억 하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는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까무잡잡한 천둥벌거숭이 스무나뭇 놈들을 인솔해 가신 분은 담임선생님과 사진기사 아저씨였
다. 사진기사 아저씨는 졸업앨범에 넣을 기념사진을 찍어주실 요량으로 동행을 하셨지만, 담임선
생님에게 아주 훌륭한 서울구경 가이드 노릇을 해주셨다.
하루는 앞서 무리를 이끌고 가시던 사진기사 아저씨가 불현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얘들아! 길을 가다가‘너희들 어디서 왔느냐?‘ 하고 누가 물으면 ’온양온천에서 왔습니다.‘라
고 대답 하거라. 그러면 그 사람은 ’참 좋은 곳에서 왔구나!‘ 하고 반겨줄 거다.”
한 참을 걷다 보니까 정말 어떤 할아버지가“촌놈들이구나, 어디서 왔느냐?”하고 물으시기에
우리들은 큰소리로“온양온천에서 왔습니다.”하고 대답을 했다.
마음속으로는‘온양온천은 무슨? 송악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하는 깡촌, 거산국민학교에서 왔
으면서…’하는 가책을 마음속으로 느끼면서도 우리들은 할아버지의 말씀에 갑자기 왕자라도 된
듯 기분이 좋았다.
할아버지는“온양온천? 참 좋은 곳에서 왔구나!”하면서 까까머리를 어루만져 주시는 것이 아닌
우리 고향 아산의 이미지는 예로부터 온천이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 발병한 안질에 효험이 좋다하여 온천을 찾아 우리 고향을 다
녀가셨다 하니, 그 역사는 반 천년도 넘을 것 같다.
1960~70년대 한참 산업화의 시동을 걸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우리 고향은 결혼식을 막 올린
젊은 쌍쌍들이 신혼여행지로 즐겨 찾던 곳이었고, 흰머리 곱게 빗은 노부부가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찾은 휴식처도 우리 고향 온양온천이었다.
이렇듯 아산?온양의 이미지는 온천이었다. 요즈음 뭇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아산의 이미지
는 무엇일까? 아직도‘아산’하면 사람들이 온천은 떠올릴까? 현충사를 기억하고는 있을까?
해마다 4월 28일 이충무공 탄신 기념일이 다가오면 온 군민들이 정성들여 잔디를 입히고, 나무
를 심어 치단장하고 가꾼 현충사를‘무슨 사찰이냐?’고 묻는 젊은이는 혹시 없을까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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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타이딩
A-san of Ti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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