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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하였다. 본관은 진주이며 부친은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
호군을 지낸 세보(世輔)이다. 자는 백옥(伯玉), 호는 쌍괴정
(雙槐亭)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 사마시 생원 2등에 입
격하였고 1721년(경종 1) 증광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음죽현감을 지내며 선정을 펼쳐 상을 받았
고 지평·장령·필선·문학 등을 거쳐 1737년(영조 13)에
승지가 되었다가 파직 당하였다. 이듬해부터 서산현감·양
양부사 등 지방관직을 거쳐 정언·지평 등을 역임했다.
<쌍괴정 현판>
1750년(영조 26)에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
왔다. 병조 참의(정3품)까지 올랐다. 사후에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문집 23권을 남겼다. 공조
참판을 지낸 원(垣)이 그의 아들이다. 묘는 연기군 내판면 약수동에 있었으나 1985년에 고향인 아산시 송
악면 동화리 배골로 이장했다. 그는 집 옆에 쌍괴정을 지었는데 당시의 현판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6] 강자위
姜自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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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은열공 민첨
의 9세손이다. 동생 자해(自海)와 함께 진주강씨 온양 지역
입향조(入鄕祖)이다. 공조전서 윤지(允祉)의 증손이고 임피
현령 수(壽)의 손자다. 부친은 봉정대부로 평창군수를 지낸
일우(壹遇)고 모친은 함양 박씨인 군수 금(錦)의 딸이며 장남
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원주(原州) 김씨 직장(直長) 연종(連
宗)의 딸이다. 음서로 관직에 나가 통훈대부 북청 판관을 지
냈고 1471년(성종2)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었다. 후
<강자위의 묘>
손은 북청공(北靑公)으로 호칭한다. 부친의 묘는 전북 임실
에 있으나 모친(함양 박씨)과 그의 묘는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분토골에 있다. 숭정기원후 5임신년(서기
1872년)에 세운 묘표가 있다.
[7] 강자해
姜自海
<1434(세종 16년) ~ ?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은열공 민첨
의 9세손이다. 형 자위(自渭)와 함께 진주강씨 온양 지역 입
향조이다. 공조전서 윤지(允祉)의 증손이고 임피현령 수(壽)
의 손자다. 아버지는 평창군수를 지낸 일우(壹遇)이고 어머
니는 함양 박(朴)씨로 금(錦)의 딸이며 차남으로 태어났다.
<강자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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