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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시어머니를모시고32년


6.25전쟁후19세였던1954년에혼인하여지금까지부부가해로하였다.하지만시댁의


생활은혼인3년만에시아버지가돌아가신후예상치못한상황을맞이하게되었는데,남



편을잃은시어머니가3년상을치르기전에신내림을받았던것이다.
남편박용남은차남이라그녀가시어머니를봉양할의무는없었다.그리고처음신내림
을받은시어머니는장남의집에법당을차리고정각을데려와굿을하였다.함께하는사
람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시어머니를 싫어하지
않았다.그러나큰며느리가무당인시어머니를용인하지못해결국,시어머니는큰아들의
집에모셨던법당을파하고그녀가사는집을고쳐법당을차리고이사를하였다.
“그 후로 시어머니가 돌라가실 때 까지 32년동안 내가 모시고 살었어. 그런디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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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발이좋아져서돈을벌게되니께큰아들이우리집이와서패악을부리기두했어.”
그녀에게시어머니는어렵지않았다한다.신을모시고사는시어머니를모시는일은,다
른무엇보다도무속일자체에대한거부감이문제였던것인데그녀는친정어머니가일찍
죽어외로운어린시절을보냈기에시어머니에대한정이깊었다.
70년함께사는부부
그녀도아들을둘이나잃었다.큰아들은공사현장에서일하다사고를당했고,둘째아
들은지병으로세상을떠났다.그러나그녀는친정아버지처럼절망하지않았다.그보다는
남아있는 아들과네딸들을위해진력하였다.
남편박용남은그녀의표현으로‘똑똑한사람’이다.남편이초등학교4학년때,그의형
이농사일하고공부하지말라며책을모두불태우는일이있었다.그로인해학교공부를
파하였는데 스스로 공부하여 마을에서는 한문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으로 통했다. 마을
이장도오래보았고그과정에서‘소라실장승제’를구성하여한국민속예술제에출연하고
충청남도무형문화재로지정되는과정에서도중요한역할을하였다.
시어머니가 무속 일로 돈을 제법 벌었지만 그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1960년대와 70년
대에는담배농사를지어재산을일구었다.담배보관실을네동이나지었고여름이면담
배조리하는일꾼5명을두었으며담배따는장정일꾼을별도로얻어했을만큼큰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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