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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자라고하였다.
독배(의식 포함)에는 섬 사람들이 묵어가는 하숙집이 7~8곳 있었고, 술집이 많았다. 큰 술
집은3개정도있었고,작은술집(목로집)은10여개되었다.당시섬사람들은친분대로광천
에서묵기도하고독배에서묵기도하였다.
군대에 가기 전에 상고선을 타고 연평도에도 다녀왔다. 상고선에서는 음식을 담당하는
화장으로일했다.당시연평도근해에조기가많았는데북한쪽수역에특히많았다.어선들
은 북으로 넘어가 조업하다가 날이 밝으면 넘어오지 않고 기다렸다가 밤에 내려왔다. 연평
도까지다녀오는데1주일쯤걸렸다.
독배에는 8명의 객주들이 있어 출어자금을 빌려주었고, 고기를 잡아주면 팔아주었다. 그
들이생선값을좌지우지하였다.조기가들어오면노조원들이고기를퍼간척지제방에늘어
놓고 경매하였다. 조기는 상인들이 구입하여 큰 탱크에 소금으로 절여 저장하였다가 엮어
판매하였다. 경매가 끝난 조기도 모두 노조원들이 운반하였다. 소금에 절여진 조기는 가마
니로포장하고트럭에실려주로서울로판매되었다.
군 제대한 후 5마력짜리 헌 발동기를 사고, 탈곡기를 사서 보리탈곡을 다녔다. 인부를 몇
명 고용하였는데 3.7제였다. 기계 주인이 70%를 가지고, 일꾼들이 30%를 가지는 것이었
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탈곡을 했는데 길이 있는 곳은 리어카로 다니고, 없는 곳은 바퀴를
떼고 지고 다녔다. 당시 부잣집이 보리 5~6가마 수확하는데, 탈곡해 주면서 70~80가마를
매상할수있었다.부자가된것같았다.경운기가나온뒤로는10마력짜리경운기로탈곡을
하고 논도 갈아주고 로타리도 쳐주어 돈을 벌었다. 이렇게 하여 논을 사 12마지기까지
샀다.
1963년경부터 아버지가 새우젓 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새우젓을 파는 사람들이 얼음을
저장했던 구덩이에 새우젓 독을 넣자고 제안하여 시작하였다. 굴은 처음에는 한 구멍으로
들어가지만 안에 들어가서는 계속해서 젓굴을 파 복잡하게 되어 있다. 꼭 개미집 같다. 더
많은드럼통을들여놓기위함이다.굴을파낸흙으로는바다를매립하였다.
당시 굴은 3개 팠는데 흙으로 된 굴은 드럼통 1,000개까지 들어갔고, 암반을 판 2개에는
300~400통씩 들어갔다. 새우젓을 저장해 주는 데는 비싼 값을 받았다. 당시 논 1평 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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