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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아산장씨 장서
| 蔣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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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의 인물로 아산(牙山) 장(蔣)씨 시조(始祖)이다. 장영실(蔣英實)의 선조라 알려져 있다. 중
국의 북송(北宋, 960년 ~ 1126년) 말기에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중원을 압박할 때 당시 금좌광록대
부 신경위 대장군이었던 그는 금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를 타고 고려로 망명해
서 지금의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이를 전해들은 왕(예종)이 그에게
식읍(食邑)과 아산군(牙山君)이라는 봉작(封爵)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 후 자세한 내용은 불확실하나
이로 인해 그의 후손들이 아산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아산 장씨 집안의 자료에 따르면 그의 증손
숭(崇)은 고려조에 판군기감사 겸 도총사를 역임했고 숭의 아들 득분(得芬)은 도총사를 거쳐 판군기
시사에 올랐다. 6세손 균(均)은 판도판서에 올랐으며 균의 아들 자방(自芳)은 삼사부사 겸 검교예빈
경을 역임했는데 거주지는 경북 의성군 점곡면 교동이다. 자방의 아들 5형제가 모두 전서(典書)를 지
내‘5전서’
로 유명하다. 후손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은 조선 세종 때의 장영실(將英實)이다.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장장군묘(蔣將軍墓)라는 큰 무덤이 있다. 일찍이 멸실되었던 것을 후손들
이 묘소 자리를 다시 찾아 토지를 매입하고 1967에 그 자리에 있던‘장장군 신사’
라는 신당을 헐고
봉분을 만들었다. 이후 200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정비했다. 아산시에 거주하는 후손들은 확인되
지 않는다.
-장서의 묘와 장영실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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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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