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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서산천수만의옛모습
36개의 성씨가 함께 거주하고 있다. 노라포라는 지명이 중국인이 낙향해서 살
았기에 낙양동이라 불렀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정도로 이주민이 많다.
특히 이곳은 개펄이 넓고 좋은 어항포구로 어업조건이 특별히 좋았기에 땅이
없는사람들에게는천국과도같았다고한다.
누구든 들어와 어업에 종사하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실제 방조제 건립 이전
에는 어족자원이 넉넉하고, 개펄이 5㎞ 정도 넓게 펼쳐저 있어 맨손어업을 하
36)
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웃마을 배들이 들어와 소라와 바지락을
캐서 한 배씩 가져가기도 했다. 음력 4~5월에는 줄만 매달아 두면 없던 성이 하
나씩생겼을정도이다.
이 노라포에는 5~6척의 중선이 정박했는데, 물이 많이 빠지면 이곳에는 배를
댈 수 없으므로 수심이 보다 깊은 대두리나 갈마리 마을 앞쪽으로 배를 댔다.
이곳은 모두 취평장 인근의 포구이므로 이곳에 배를 대야 취평장(4·9일)을 보기
가 용이했기에 이곳에 배를 정박하고 어물을 장에 내다 팔고는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돌아갔다. 때문에 취평장이 번성하던 시절에는 노라포부터 칠전리까지
해변에 주막이 한 집 건너 있었다. 아가씨 집도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중선
은 생선을 싣고 들어와서 고기를 부리고 팔았다.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기를 즐
겼는데,이와관련해서“술집에서먹으니댓고장만남더라”라는말을한다.
부석면송시리2구점말포구
송시리 2구는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 어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았다. 송시리
36) 이 마을 앞의 천수만은 육수가 넉넉히 흘러 육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산란을 하는 고기어종이 많
이 있었기에 고기가 매우 흔했다. 서해안에서 나는 모든 고기는 이곳을 거쳐 갔기에 어종은 가짓수를 일
일이 셀 수가 없었는데, 가오리, 상어, 민어 등의 큰 고기를 주로 잡았으며, 개펄에서는 바지락, 소라, 주
꾸미, 오징어, 황새바치(꽁치새끼), 학꽁치, 장어 등을 잡았다. 장어는 한 번 잡으면 몇 관씩 잡았다. 이
를 두고 주민들은“물 반 고기 반”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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