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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 전국의 열사 린상여(藺相如)의 벽을 완성하는 것 좋고 혹, 불
부의 일이다
(福澤)도 후등(後藤)의
행히 패하여 옥쇄하여도 또한 좋지 않은가라고 복택
. 호사다마 세상사 풍파있다.
호언에 승복하였다
200,000원 조달의 성공되려는 시각에 그 융통처인 제일은행은 정
드디어
, 이에 후등(後藤)은 참의 이등박문
부의 승인이 없으면 이를 응할 수 없다고
(伊藤博文)과 회합 그의 동의를 얻고자 함. 이등(伊藤)은 겉으론 이를 찬성
(井上馨)에게 고하였다. 정상(井上)은 크게 놀랬다. 정
하고 비밀리에 정상형
(伊藤)에게 말하기를 ?정부는 목하조약 개정에 착수하여 전력을
상은 이등
(後藤)의 손을 빌려 조선개혁의 임무를 맡긴다
경주하고자 하는 이 때 후등
. 도리어 륙오(陸奧)를 권유하여 구주로 외유토
는 것은 심히 불가한 것이다?
(竹添公使)에 이르고 독립당으로 하여금 조
록 하고 또한 그 뜻을 죽첨공사
선개혁의 대사를 수행시키고자 하였음
(後藤)의 권도도 복택(福澤)의 고심도 끝내 수포로 돌아
이렇게 해서 후등
갔고 옥균은 궁여의 몸을 이끌고 공허히 귀국하였다
(다) 일본의 대한정책의 일변
, 백방계획
김옥균 공수 귀국하자 몸은 사대당의 중첩 중에 싸여 고심초사
(岡本柳之助)에 보내, 내원을 촉구하기를 빈번히 하였다.
사신을 강본유지조
(伊藤), 정상은 후등(後藤)의 조선에 있어 일이 안 된다는 것을
이때에 이등
(鳥村) 대리공사로 하여금 독립당 즉,
듣자 갑자기 대한정책을 일변하여 조촌
, 박의 환심을 구해 암암리에 한정 개혁의 뜻을 도울 것을 시사하였다.
(福澤)의 수기에 명기되었다. 그 대요는 ?김옥균은 다년간 국
이 일은 복택
, 사대당의 주의를 크게 분개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같
왕의 신임을 얻어
, 당시 정부의
이 일본에 와 비밀리에 일본정부에 의뢰할 것을 도모하였지만
170,000원을 횡빈(橫
의사를 득하지 못하고 겨우 그 줄의 호의를 얻어 일금
)은행부터 채용했을 뿐 170,000원을 갖고는 국사에 사용하기에는 부족하
. 즉 1883년 초 여름경 본국부터 3,000,000불 외채의 위임장(이 외채 위임
(竹添)공사는 가짜라고 말하여 김씨의 계획을 방해했음)을 갖고
장을 죽첨
(橫濱)재류인 모-루
다시 일본에 와 미국공사의 비밀리의 주선을 얻어 횡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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