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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과 싸운뒤 4월 25일 퇴각하자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서울 종로 네거리·경기도 강화·경상도 동래군·함양군·경주·
부산진 등을 포함하여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그 비석에는 병인양요 이래의
구호인「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
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의 12자가 큰 글자로 그 옆에「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입(戒我萬年子孫 丙
寅作 辛未立)」(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이
작은 글자로 각각 새겨져 있다. 그뒤 1882년 임오군란때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
자 이틈을 탄 일본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
신창초등학교 교정 입구에 세워져 있는 척화비도 화강암의 비신과 비좌로 되어 있
으며 총고는 147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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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아산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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