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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 6남을 두었다. 이중 둘째는 부천과 흥양, 셋째와 다섯째는 수원, 넷째는 부여 임천, 여섯째는
여주 지역에 터를 잡았다.
큰아들 임추(林樞)는 봉열대부(정4품)로 정언을 지냈으며 부인은 초계정씨로 사복시정 정지손(鄭智
孫)의 딸이다. 임추는 두 아들 자영(自英)과 자화(自華)를 두었다. 임자영은 부사직을 지냈고 후손이
계속 도고에서 살아왔다. 둘째 임자화는 생원시에 급제했고 3남을 두었으며 예산 쪽에 자리를 잡았다.
임수겸의 후손 중에는 6세손 매헌(梅軒) 임석주(林錫周)가 포저 조익의 문인이었으며 처사이자 학
자로서 이름이 있었고 임석주의 손자 임상언(林尙彦)은 호가 도산(道山)이며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
사에 올랐고 문집을 남겼다.
임수겸이 도고 화천리에 머물 때 정자를 짓고 연정(蓮亭)이라 하였으며 이후 후손들을 교육하는 장
소로 이용되었다. 그 뒤 쇠락해진 것을 1955년에 16세손 임달선(林達善)이 중수해서 마을 서당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84세에 졸하였고 묘는 수원(화성시) 봉담면 봉서산에 있다. 직계 후손들의 묘
는 도고 일대에 있다. 지금도 도고 도산리 일대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살고 있다.
-임수겸이 지은 연정과 큰아들 임추의 묘-
[123] 장흥임씨 임욱
| 任勖
<1680년(숙종6년)~1736년(영조12년) >
조선 후기의 무신이며 장흥임씨(長興任氏) 아산시 지역, 영인면 월선리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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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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