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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 구간이다. 와룡천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냇물이 마치 누워있는 용의 모습 같다
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와룡천의 끝 구간이 용와리 앞으로 뻗어있는 벚재산을
감싸며 흘렀다. 이 물줄기는 벚재산을 에돌아서 천수만 바다로 합류했다.
옛날 벚재산을 감싸고 흐르던 냇물은 절벽과 백사장과 물길이 어우러지며 아름
다운 풍광을 만들어냈다. 또한 벚재산 너머로는 천수만의 잔잔한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처럼 용촌별서기에 나타난 아름다운 산천과 못과 포구는 옛 시절 용와
리 마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벚재산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는 때때로 마을에 재앙을 불러왔다. 물줄
기가 벚재산을 감싸며 완만하게 흐르므로 큰 비가 오면 홍수피해가 컸다. 한여름
큰 비가 쏟아질 때마다 하천이 범람하며 마을 앞 들판은 물에 잠기기가 일쑤였다.
물길이 천수만 바다와 맞닿아있으므로 밀물 때와 겹치면 홍수 피해는 더욱 컸다.
용와리는 홍수피해를 면하는 것이 두고두고 숙원사업이었다.
1970년대에 용와리의 오랜 숙원사업이 해결되었다. 용천뿌리에서 벚재산으로 이
어지는 산줄기를 잘라내어 와룡천 물줄기가 바다로 직접 통하도록 했다. 이후로는
와룡천 물줄기가 벚재산을 감싸며 마을 앞으로 흐르지 않고 직접 천수만 바다로
통한다.
지금은 마을 앞으로 흐르던 물길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논밭이 되었다. 논밭으
로 변한 들판 이름이 오리뜰이다. 마을 앞으로 벚재산을 감싸며 흐르던 물줄기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있다.
남구만의 절순헌기와 남일성의 용촌별서기에 나오는 용와리는 수백 년 세월동안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글 속에 표현된 옛날의 아름답던 경치를 머릿속으로 상
상해볼 뿐이다.
3) 고향 결성에서 낚시를 통해 깨달은 세상 이치
남구만이 고향에서 지은 글 중에는 ‘낚시 이야기’가 있다. 원제목은 ‘조설(釣設)’
이며 낚시를 통해서 깨달은 바를 기록한 글이다.
남구만은 42세 되던 1670(현종11)년 4월 벼슬에서 잠시 물러났다. 이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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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향토문화 회원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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