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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은 단종 1년(1453) 무과에 급제하였다. 인인경으로 인하여 구루미 마을은 교동인씨의 세거지가
되었고 이후 아산시 지역 이외에도 예산 덕산, 홍성, 당진 면천, 보령 등 내포지방과 천안, 전주, 여
주 등 각지로 후손이 퍼지게 되었다. 그의 증손대에 이르러 여러(10개) 파가 나뉘게 되었다.
세자 패륜 사건 : 태종의 세자 양녕대군이 곽선(郭璇)의 첩 어리(於里)를 간통하고 궁중에 들여온 사건이다. 이
당시 인인경은 군부의 책임자 중 하나인 삼군진무(三軍鎭撫) 직책에 있었는데‘동궁문(東宮門)
을 파수함에 조심하지 못했던 까닭’
, 즉 세자가 드나드는 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간접
책임으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가 풀려났다.
[122] 평택임씨 임수겸
| 林守謙
<1409년(태종9년)~1492년(성종23년)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평택임씨(平澤) 8세이며 전객령공파 아산시 지역, 도고면 화천리 입향조이
다. 현재 화천리에 거주하는 25세 임승목(林承穆, 79세)씨의 17대조이다.
그는 고려 말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을 지낸 평택임씨 4세이자 중시조(1세조)인 임세춘(林世春-
世椿)의 현손이다. 증 통훈대부 공조판서 임보(林
)의 증손이고 진사로 가선대부에 오른 임윤생(林
允生)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통례문 봉례(奉禮)를 지낸 임무(林茂)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이다.
임수겸의 자는 익지(益之)이고 호는 갈곡(葛谷)·갈곡신옹(葛谷愼翁)이며 김숙자(金叔滋)의 재종형
인 김종리(金從理)의 문인이다. 1447년(세종 29) 친시(親試)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보직
되고 1455년(단종 3)에 우정언(右正言)에 임명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 좌익원종공신(左翼原從功
臣) 3등에 책훈되었다. 사예(司藝), 사성(司成)에 제수되어 성균관과 종학·사학 등에서 교육과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이후 전라도관찰사와 호조·예조참의(參議)·대사성(大司成)·대사간(大司諫) 등
을 역임했다. 세조가 늘 편전에 불러들여 정사를 논의하고 총애했으며 이후 부제학에 올랐으나 곧 관
직에서 물러나 신창현, 현재의 아산시 도고면 화천리로 퇴거(退去)했다. 1470년(성종 1)에 사표(師
表)로 부름을 받고 주자(胄子-세자)를 가르쳤으며 이듬해에 동지성균관사에 올라 오랜 동안 후학 양
성에 힘쓰다가 1482년(성종 13)에 사직하고 물러나 도고로 내려와 머물렀다. 그가 왜 도고 화천리로
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후손들은 그의 호를 따서‘갈곡공파’
로 칭한다.
부인은 진주강씨이며 영중추 강득호(姜得浩)의 딸이다. 추(樞), 환(桓), 근(根), 석(
), 격(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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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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