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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서산천수만의옛모습
석축으로이용했다.
이곳은 1939년에 일본인이 서산지방에서 생산된 곡물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
기 위해 개설된 시도 1호선인 양대선(良代線)이 개설되기도 했다. 지금도 서산 시
내쪽으로 50미터 지점에 당시 건립된 창고 3동 중 1동이 남아 있다. 서산시의
곡물은 모두 이곳 창고에 취합되었다가 일본으로 공출되었다. 이곳을 흔히‘돌
장나루터’라부른다.
양대동 2통 지역과 죽성동 사이에는 배다리[舟橋]라 불리는 다리가 있다. 지금
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지만 과거에는 폐선을 놓고 두 지역을 건너 다녔다고
한다. 이곳의 다리 유무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곳으로 수시로 중선이 들락거렸
다는 사실이다. 잠시 선원들이 머물 수 있는 술집도 여럿 있었다. 이곳을 드나
드는 배를‘황새기배’라 불렀는데, 이는 황석어로 담은 젓을 싣고 오는 배라는
뜻이다. 황석어젓 뿐만 아니라 새우젓과 생실치도 가져왔다. 주로 당진 석금리
배와 원산도, 효자도 등지의 배였다고 한다. 대개 이들 배는 8~9월에 젓을 가져
와 말에 담아 팔았다. 가을철에 김장을 하기 위해서 미리 젓갈을 구입했다고 한
다. 실치는 직접 구입해서 실치 한 말에 소금 세 사발을 넣고 직접 젓을 담아 삭
혀서 먹기도 했다. 소금양이 부족하면 젓이 곯게 되므로 넉넉히 넣어야 한다.
당시소금은양대동의전매청염판에서구입했다.
양대리 염판에서 소금을 구입할 때는 줄을 서서 구입했다. 1년에 쓸 양을
7~8월의 기간 동안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분량만큼만 나누어서 구입한다. 소
금의 종류는 염판의 형태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해 거래되었는데 염판에 자기
를 깔고 졸여서 빛깔이 고운 것과 염판흙을 졸여서 빛깔이 좋지 않은 것으로 구
분했다.빛깔이고운것의가격이비싸다.
한편 간월도 배는 서산을 가기 위해 양대리의 배다리 포구를 이용했다고 한
다. 음력 6월에 잡은 육젓으로 담은 새우젓이나 봄이나 가을에 조기젓을 담아
서내다팔았다.배다리포구에는중선1~2척이드나들수있는좁은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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