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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교동인씨 인인경
| 印仁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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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교동인씨(喬桐印氏) 아산시 지역, 탕정면 동산1리 구루미 마을의 입
향조이다. 인인경은 교동인씨 44세(世)이며 중시조 인당(印
, ?~1356)으로부터 4세이다. 동산리에
거주하다가 현재 천안으로 이사한 후손 60세(世) 인영철(印永哲, 70세)씨의 16대조이다.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서북면병마사와 참지정사 등을 역임했고 석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상산군
(商山君) 김득제(金得齊) 등과 함께 왜구 격퇴와 항몽 투쟁에 공을 세웠으나 끝내 희생된 중시조 인당
의 증손이다. 역시 고려말의 무신이며 아산만 일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는 등 각지에서 왜구 격퇴
에 큰 공을 세우고 이부시랑(정4품)을 지낸 인해(印海, ?~?)의 손자이다.
홍주목사와 서북면체찰사 등을 거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종2품)로 재임 중 최영 세력으로 분류
되어 이성계 세력에 의해 경북 함창으로 유배 후 사사당한 인원보(印原寶, ?~?)가 그의 아버지이다.
황해도 토산군(兎山郡)에 주로 거주했다고 하는 인원보는 조선 건국 이듬해인 1393년에 이성계에 의
해 형조판서로 추증되고 익재공신(翊載功臣) 함산군(咸山君)에 봉해졌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
氏)로 병조참판 윤상은(尹相殷)의 딸이며 인경(仁敬)과 예경(禮敬) 두 아들을 두었다.
인인경의 자(字)는 성직(聖直)이고 호는 아천(雅川)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로 공조판서 겸
(兼)의 딸이다. 조선 태종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정3품)에 올랐고 삼군진무(三軍鎭撫), 행삭주도호부
사(行 朔州都護府使)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가 언제 왜 탕정면 구루미 마을에 오게 되었는지 그 내력은 알 수 없다. 1417년(태종 17년)에 세
자의 패륜 사건*과 관련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이곳으로 와
서 은거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 600
년 전의 일이니 그 연원이 매우 깊은 집안
이다.
인인경은 아들 여섯을 두었다. 장남 근
(瑾)은 공조좌랑·강서현령 등을 지냈고,
차남 종(琮)은 숙부에게 출계하였다. 3남
침(琛)은 사헌부 지평을 역임했으며 4남
구(球)는 용양위 부장에 올랐고 5남 진
-인인경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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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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