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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들어서 격렬한 싸움은 아니었지만 육상에서의 일청 양군의 시련으로서 그
. 그 승패는 실로 양국 군대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지대함을
효시다
. 다른 방향 남정한 여단으로서 후환의 우려를 없애기 위해 경성
알 수 있다
. 그리하여 한번 명치의 대발전사를
부근의 모든 부대의 공이라 할 수 있다
벌리게 되는 전환기며 일청전쟁에 이르자 우리 아산땅은 성환과 더불어 깊
이 뇌리에 새겨지게 되며 대발전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7) 부 장강장군담(附 長岡將軍談 : 당시 여단참모)
10시 너머 상토교동방(上土橋東方) 고지부터 행진을 시작
오늘 아침 오전
하여 적을 추격하며 여단본대의 우측에 있는 평행도로를 전진하자 무전중
(武田中佐)의 우익대하고는 하천 범람으로 그 연락이 완전히 단절됐다.
물론 여단장을 비롯 우리 막료 일동에 있어서는 적은 아직 그 일부를 아
산에 주둔시키고 있다고 생각해 여단명령 제 일항에는 ?여단은 금일 아산을
향해 전진하여 어제 패주한 적을 섬멸함을 바람?이라고 하는 의미의 목적을
들 수 있다는 것을 보아 안다
우익대는 당면의 잔 적을 소탕하고 어젯밤 늦게 아산에 진입한 것이다
후에 이 일을 듣고 일동 마주보고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7월 30일 오전 10시에는 여단의 제대는 전부 아산에 집합했다.
이리하여
아산은 적의 상륙 근거지로서 오래 그 본영을 두고 수륙 연락의 병참 기지
였기에 동지 및 해안의 백석포에는 소총이나 탄약 등의 병기 재료를 비롯
보리 등 식량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군수품이 집적해 있었기에 아산의 전투
. 이에 대해
보고의 말미에는 ?기타 노획품 산과 같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30년이 경과한 오늘이 있어도 그 초안자인의 허풍이라고 전해지지만, 조선
, 보리, 야채 등에 대해 절대의 결핍을 느낀 우리들의 눈에는 일
상륙이래 쌀
. (일청전사 성환전기
견 그것이 후지산보다 높게 크게 보인 것은 정말이다
등에 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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