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2페이지

112페이지 본문시작

아버지는 증좌부승지 이순(李淳, 1562~1637)이며 어머니는 성주황씨(星州黃氏)로 황세득(黃世得)
의 딸이다. 그는 원배(元培), 형배(亨培), 천배(天培), 정시(廷蓍) 등 네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형
이원배는 외아들 욱(稶)을 두었으나 대를 잇지 못하였고 셋째인 이천배도 무후하였고 넷째는 출계하
였으니 그가 실질적으로 대를 잇게 된 셈이다.
이형배의 자는 인백(仁伯)이며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그가 언제 왜 둔포 봉재리로 왔는지 확인되
지 않는다. 그의 부인이 교동인씨(喬桐印氏)로 참봉 인대나(印大那)의 딸이기 때문에 멀지 않은 탕정
면 동산리 일대가 교동인씨 세거지여서 혼인으로 인하여 들어오게 되었으리라 추정하지만 근거는 없
다. 병자호란 때 피난을 계기로 정착했을 수도 있다. 시기는 대략 370~380년 전으로 본다. 부친의
묘소도 옆 마을인 음봉 신정리에 있지만 그가 모셔온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묘는 옆 마을인 둔포면
관대리에 있다.
그는 집(
), 계(稽), 진(
), 익( ), 희(稀), 거(
) 등 6남2녀를 두었으니 이후 후손들이 크게 번창
하였다. 둔포 봉재리와 음봉 신정리를 중심으로 하여 장재울, 온양, 청양 등 각지로 퍼져 나갔고 지금
까지 잘 이어져왔다.
[119] 성주이씨 이화
| 李華
< ? ~ ? >
조선 중후기의 인물이며 성주이씨(星州李氏) 9세(世)로 문열공파(文烈公派) 아산시 지역 입향조이
다. 현재 탕정면 명암3리에 살고 있는 이석진(李錫震, 66세)씨의 15대조이다.
아들은 이현정(일명 국정國禎, 1549~1607)이며 손자는 이이(李
, 1581~1663)이다. 그에 관한 자
세한 사항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명확하게 그를 입향조로 여기고 있다. 그의 증손자
인 12세(世) 이후기(李厚棋, 1608~1672)가 탕정면 명암3리 증좌미 마을 입향조다. 이화는 음봉 또는
둔포 지역에 처음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증손자 이후기는 증좌미에 들어오기 전에 인근 마
을인 가락바위에 살았다고 한다.
이화의 정확한 입향 시기는 알 수 없다. 아들 이현정이 태어난 시기를 기준으로 막연하게 대략 460
년 전 쯤의 일로 추정한다. 묘는 설화산 남쪽 자락에 있다고 하나 확인하지 못했다.
증손자 이후기의 아들 요(橈)가 덕연(德淵), 덕원(德源), 덕윤(德潤), 덕영(德泳), 덕침(德 ) 등 5남
과 2녀를 두면서 증좌미 일대에서 성주이씨의 후손이 번창하게 되었다.
112
아산입향조 |

112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