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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 백석포(白石浦), 신례원(新禮院) 방면에 대해 전초를 배치하
압수하고 신창
고 아산의 점령을 확실히 하고 일부는 아산 부근에 야영을 하고 그 밤을 세
우다
7월 30일 여단장은 전야부터의 제 정보를 얻어 또 한 주민의 말에 의해
적병 각 방면으로 괴멸 패주한 것을 확실히 알고 독립기병중대를 신창
) 방면에 파견. 청병이 그 지역에 없으면 아산으로 귀환하도록 명함.
(鷄頭津) 독립지대도 아산으로 들어옴. 이 지대는 28일 임지
그 날 계두진
. 나루터를 감시하고 있든 중 29일 오후 2시 30분 지대장 본간중위
에 도착
(本間中尉)는 병졸 12명을 인솔 해안 백석포에 건너가 정찰중 오후 5시 군
(軍勿里) 독립지대의 일소대 이 지역으로 온 것과 만나 성환방면 전승
물리
. 오후 3시 10분 기병중대
의 전말을 듣고 수비지를 철수하고 돌아온 것임
, 어제밤 적의 보병 기병 약 150명 신창에 숙박하고 주민
아산으로 귀환하고
(洪州) 방면으로 도주했
의 의복 식량을 약탈하여 오늘 아침 변장하여 홍주
. 이에 여단장은 적병은 완전 패멸하고 아직 전투력이
다는 보고를 가져옴
보강되지 않았음을 판단하고 그 무력한 병력을 상대로 허송세월 하느니 보
다는 우선 경성으로 귀환하여 빨리 북방의 적에 대치할 계책을 세우는게 좋
다고 결정 다음날 출발할 것을 명령하였다
80명과
이 날 일부를 성환에 파견하고 보병 각 중대로부터 선발된 병졸
(?馬) 약간을 아산에 주둔시키고 두 곳의 전리품을 정리 수송케 함. 즉
수마
(京城)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각대 7월
해로로 인천에 닿는 것과 육로 경성
31일 오전 4시 아산을 출발 정오 평택에 도착 야영에 들어갔다. 지금 그 당
시의 상황을 살펴보건데 청병은 처음 성환 진출 전은 아산읍내에 가득 차
(朝鮮人)은 모두 피난을 하여, 각 민가는
한 두 사람의 제외한 다른 조선인
, 주재소, 보통학교 등 주요 건물에 묵고 있었
물론 그 간부는 현 면사무소
. 청병(淸兵)이 만든 산병호(散兵壕) 및 감시소의 흔적은 읍 북 학교산 북
, 또 영인산 북쪽 기슭에 남아있고 간부가 거주한
쪽 산기슭 서쪽 기슭으로
. 그리고 소총 등의 부분품이 지
건물부근에서는 소총탄이 많이 발굴되었다
금도 왕왕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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