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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비신하들을모아놓고성현의도를강구하고밝히소서.만일그러하지않으면구경거리
에정신이쏠려뜻을잃기쉽습니다하니상이들으시고옳은말이오.하시었다.얼마지나서
대사헌으로하여금상소케하여수유죄의법률을가볍게고치지말것을요청하였다.무인년
(戊寅年 1398)에참찬문하부사겸수문전학사로임명하였다.정종기묘(1399년)에평양부윤성석린
(成石璘)이의기도( 器圖)를바치니상께서이그림을경연에걸어놓고여러신하들에게보이며
그림의그릇에대한설명을공에게부탁하니공이연단에나와서연설하기를이그릇은비우
면쓰러지고가득하면엎어지고물을알맞게담으면똑바로서게되는것이니사물의이치가
허(虛)와지(持)와영(盈)의어려움이있음을알아야합니다라고정치에대한설명을하였다.
태종원년신사년(1401)에우정승에안평부원군을봉하였다.
중국 명나라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나 구원을 청하여 왔는데 구원을 거절하면서 오히려
답장의 말이 불손하였다 하여 명나라 황제가 대노하여 문책한다 함으로 조정이 모두 겁을
먹고있는데공을사신으로뽑아서명나라에보내어아뢰었다.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예를 모름으로 그러한 것이지 어찌 감히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하
고 간절히 용서를 빌고 심히 기뻐하사 칭찬하시고 면복(冕服)을 하사하고 우대하며 또 시를
지으라 명하심으로 공이 시 십 수를 지어 올렸더니 황제가 어제시(御製詩) 두 폭을 하사하시
며 돌려보냈다. 본국에서는 상이 나라의 의장대를 갖추어 영접하고 돈과 말, 큰 저택을 주
어 특별한 대우를 하였다. 이 해에 조준(趙浚)을 대신하여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서와오경등의서적을가지고와바치었다.
임오년(1402)에 벼슬을 내놓고 왕의 명을 받아 상왕의 행궁으로 문안드리러 갔다. 이러한
일들은 전에 있었던 정도전(鄭道傳)의 변으로 상왕이 함흥으로 내려가 있으면서 문안 사신이
살아서 돌아오지를 못하는지라 이러한 때에 상이 공으로 하여금 다녀오도록 함은 본디 공
이 상왕하고 매우 친밀한 사이였으므로 명을 받고 함흥 행중에 당도하니 상왕이 들어오라
고 청하며 손을 잡으며 반가워하였다. 이에 공이 시 한수를 소매에서 꺼내어 올리니 상왕
이 흔연히 받아 읽어보시고 나는 경을 그리도 생각하였거니와 경도 과연 나를 이토록 생각
했었던가. 이에 감동하여 깨닫고 서울로 돌아왔다. 팔월에 상께서 백성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는지라 나와서 등문고(登聞鼓)를 울리라고 령을 냈다. 공이 상소
하여 이르기를 서울 밖에 사는 백성으로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는
홍성의금석문_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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