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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이길유(李吉儒)(1714~1783)
공의 휘는 길유(吉儒)고 자는 사적(士迪)이요. 관향은 신평인(新平人)이다. 계출(系出)은
고려조평장사(平章事)로시호(諡號)가문간(文簡)이신휘덕명(德明)을시조로하고성균
관 생원 증(贈)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가선대부 이조참판이신 고위 국형(國馨)과 비위 정
부인파형윤씨사이에서4남중3남으로숙종갑오년에덕산현북내야면칠전곡(현봉산면
옥전리옷밭골)에서태어났다.
어려서부터침착하였고문재와필법이비범해6세에재상(宰相)조태채(趙泰采)가참판댁
에와소년의농필(弄筆)을보시고“네가대자(大字)를쓸줄아느냐”하문하니소년이쓸수
있다고답하고대자2자를쓰니상공께서칭찬하시었다.
7세에숙종대왕이승하하시니이소년이흰옷을입고삼베로만든띠를띠고있기에주위
에서물으니소년이답하기를“나라에국상(國喪)이있은연유”라고하니주위에서매우기
이하게여기었다.
11세에엄친(嚴親)참판공으로부터통감을시작으로글을익히니날로학문이성취되어갔다.
24세에처음으로과거를응시하였으나미해(未解)한부분이있어집에돌아와두문침사(杜
門沈思). 4개월에 부모봉양이 급선무라 생각하고 투필(投筆)하니 주위에서 매우 아깝게 여
기었다.
그후영조갑자식년시에무과장원으로급제하시니그때나이가31세였다.합격후유가일
(遊街日)에 좌상 송인명(宋寅明) 대감을 뵙게 되니 배석한 총융사 정찬술이 대감에게 문무
를겸비한기대되는한량이라고아뢰니송공이기뻐하며그대가바로그이모(李某)냐고반
문하고장(將),상(相)이합석한연석에서그의합석을허락하시었다는일화가문중에전해
오고있다.
유가를마치고바로국경수비에나가시니이어비랑이되시고다음에훈국주부에오르고다
음해에는일본에가는상사(上使)의막료로가시었다.
무진년에 조정에 돌아와 총부도사에 승진하시고 기묘년에 영종방어사 임오년에 봉산군수
로 다음해엔 의망으로 여주부사로 계시다가 호남좌수사로 다시 조정에 계시다가 가선대부
영남좌병사로부임하였다.
재임중왜구의침범을대비해장졸의훈련과성곽의보수에진력하던중,질자(姪子)도찬
(道燦)의사건으로사직하고향리로귀향하니영조께서공의무고함을아시고부르시니또
의망(擬望)으로누차천거되었으나한번도상경하지않고집에서두문(杜門)사객(謝客)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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