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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養性堂後記
養性堂者 在連山遯巖 我文元先生講道之堂也 堂久? 惟餘其址 凝道堂者 遯巖書
院 肄業之堂也 水?書院之前 遷書院於遯巖之右谷 而凝道之堂 猶存焉 後孫士林
以凝道舊堂 扁之爲養性堂 用寓愁慕 謹按先生所舊養性堂記 略曰 遯巖圍林中
舊有亭 扁曰雅閑 本世祖朝文士崔淸江之別業也 後爲吾伯祖父庶尹公所得 而余
因家焉 背有小山 山下有松竹 林外有淸溪 白沙明媚 深可移艇後澗懸流巖石間
引爲上下池 以種紅白蓮 又有桃蹊柳汀而莎草被堤者 可數百步 梨棗栗楮漆桑栢
環繞左右 郊外有薄田數頃 若使?僕 勤力其中 足以供?粥 亭有舊刻詩什 其一
乃吾先祖政丞公所題也 復求諸名作而續之矣 壬辰喪亂亭灰爐 ?仰傷感 仍?小
堂 於遺址 復刻諸詩 又改號曰養性 於先生之?仰傷感 幸勤重茸 名以養性者 意
豈徒然哉 日興門人弟子 居是堂而探天人性命之原 究經曲節文之本 王佐大業 將
以光旌于邦家 直道難容 卒不遇而退 惟義理淵源之正且大者 傳之百世而無窮則
是堂講道之功也 後孫士林之以凝道爲養性 固出於一時權宜 異日有志有力者作
復就養性之址 煥然締造 一如先生在世時規制 若上下池紅白蓮可種也 若蹊之桃
汀之柳堤之莎可修飾也 尙鉉 視陰人也 猶有所厚望於諸君子 年代己邈 雲煙百燮
琴瑟杖? 撫?茫茫 凡爲後孫士林其有不優然而思 ?然而警者平 後孫光鉉 永和
寔掌遷院宇移堂扁之役 使尙鉉 記其事 竊惟先生原記 旣載遺稿故 敢?述之而爲
養性堂後記云
聖上二十年 癸未 九代孫 尙鉉 謹識
<번역문>
양성당 후기
양성당이란 연산의 돈암에 있으니 우리 문원공 선생이 도를 강론하던 집이다.
집이 오래되어 무너지고 오직 터만 남았다. 그 터에 지은 응도당은 강당이었다.
물이 서원의 앞을 침범해서 서원을 돈암의 오른쪽 골짜기에 옮기고 응도당은 그대로
두었으니 후손과 사람들이 응도당의 옛 집으로 양성당을 삼아 사모함을 부치었다.
삼가 살피건대 선생의 저술한 바 양성당 기문에 대략 이르되, “돈암의 숲 속에 옛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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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지역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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