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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李
)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찬(李
)이고 어머니는 천안전씨(天安全氏)로 참봉 전세
익(全世翼)의 딸이다.
이지호는 삼남 중 차남이다. 자(字)는 백고(白高)다. 갈산1리 안지므레 마을은 천안전씨가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마을인데 이지호가 외가인 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1646년
(인조 24년)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것은 이미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의 일이다. 아버지
의 사망 시기는 전해지지 않으나 그가 어렸을 때의 일로 보인다. 아버지 이찬(李
)의 비문에도 이지
호가 전씨 문중에서 학업을 연마하고 이로부터 내금리(안지므레)에서 고성이씨의 후손들이 세거(世
居)하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 1630년 전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니 약 380년 전의 일이다.
선대는 주로 경기도 남양에 거주하였다.
족보에는‘선조 경술 생’
으로 되어 있으나 경술년(1610)은 광해군 때이다. 진사가 된 해도 족보에
는‘을유’
라 하였지만‘사마방목’
에는 병술년(164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졸한 해가 족보의
기록대로 경오(庚午)년이라면 향년 81세가 된다. 묘는‘온양 일북면 내금호례 작곡(作谷), 즉 지금의
탕정면 갈산1리 안지므레 잣골에 있다.
부인은 순흥안씨(順興安氏)이며 태두(泰斗)와 태하(泰河) 두 아들을 두었다. 이태두는 후손을 두지
못했고 차남 이태하가 동휘(東輝)와 덕휘(德輝)를 두었으나 장남 이동휘가 또 자식이 없어서 동생 이
덕휘의 외아들인 관(瓘, 1703~1733)을 계자로 하였다. 이관의 외아들 명대(明大)가 삼남을 둔 이후
손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손이 많은 편은 아니며 갈산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지호의 묘와 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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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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