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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채동교
蔡東喬
<1772(영조 48년) ~ 1824(순조 24년) >
조선 후기의 효자로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평강 채씨 아산 입향조인 증 호조판서 응정(膺禎)의 현손이
고 광하(匡夏)의 증손이며 홍명(弘命)의 손자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정언 등을 거쳐 이조정랑을 지
낸 지영(趾永)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 우(遇)의 딸이며 2남 1녀 중 장남이다. 자는 경천(景遷)이고
호는 금계(琴溪)다.
그는 어려서부터 맛있는 것이 생기면 꼭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는 등 효심이 지극하여 주변 사람들의 칭
송을 받았다. 어머니에게 병환이 생기자 좋은 약재를 구
해드리며 극진히 간병했다. 특히 한겨울에 어머니가 꿩
알을 먹고 싶어 하자 매일같이 산 속을 헤매어 기어이
구해서 드렸다. 또한 생대추를 먹고 싶다고 하니 묵은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려 떨어지니 이것을 갖다드려 병
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50세에 친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조석으로 슬퍼하니 몸이 상하여 그도
곧 졸하였다. 그의 효행을 마을 사람들이 적극 알려서
1855년(철종 6)에 정려가 내려졌고 통덕랑에 추증되었
다. 정려는 지금도 염치읍 대동리에 전해진다.
<효자 채동교 정려>
[67] 최씨
崔氏
< ? ~ ? > - 맹노술의 며느리
조선 말기의 열녀·효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로 참봉 치항(致恒)의 딸이다. 맹사성의 후예인 정언 맹
노술(孟魯述, 1810~?)의 아들과 혼인했다. 그는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군이 죽고 자식이 없는데다
가 이어서 시부모의 상을 당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3년상을 치르고 극진히 공경하여 제사를 받들었다. 이
후 족질(族姪)들을 거느리면서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쳐 가도(家道)를 이루었다. 나이 칠십에 졸하니 향리
에서 높이 받들어 귀히 여겼다.
[68] 최씨
崔氏
< ? ~ ? > - 지한문의 처
조선 말기의 효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택주(宅
柱)의 딸이며 증호조참판 지한문(池漢文)의 처다. 어릴
때부터 천성이 온유해서 부모님을 효성으로 섬겼으며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충주(忠州) 지(池)
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후에는 시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효부 최씨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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