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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19
제53호
제53호
지역학칼럼
예산학특강-내포지역의개신교전래
1917년 김광식 목사가 맡은 내포의 6개 구역은 홍순호 전도사의 해미와 서산 그리고 이용주 전
내포지역감리교목회자임명상황(1931-1941)
도사의 예산ㆍ당진구역의 성장이 보고되고 있다. 광천에 교회를 세우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갈산
1931
1932
1933
1934
1935
1937
1939
1941
교회는 1917년 사경회 이후 출석인원이 2배로 늘었다. 또 특이한 것은 당시 내포지역의 교회들
예산
심명섭
심명섭
안성호
이명제
조종범
안성호
김희운
이명구
사이에일반연보와는별도로유사부에직접오곡과채소,고추,파,현금,수공품등으로십일조를
삽교
김재홍
김재홍
김병제/김재홍
이명제
최종순
안성호
안성호
헌금하는교회내의조직이형성되고있다는것이다.홍성구역의갈산교회와1913년경세워진효
홍성
김병제
김병제
송득후
송득후
이명제
전재풍
송희용
김용무
교교회, 그리고 설립된 지 1년밖에 안 되는 서산구역의 해미교회, 당진구역의 율사교회가 이 운동
광천
한선호
한선호
한선호
덕산
김덕경
에참여하고있었다.
당진
이종권
이종권
이종권
홍순호
송희용
송희용
정형기
송사원
서산
이광순
이광순
박유병
김태형
김태형
이명구
김진태
2.내포개신교확산
갈산
조종범
원용한
원용한
해미
송은광
(1)감리교의확산
안면도
김기원
김기원
강학수
강학수
성낙준
임봉익
보령
안성호
안성호
이태규
김태현
김태현
김진태
김기동
1919년의 3.1운동은 내포의 감리교회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그 해부터 1921년까지 내포
지방 교인 수의 감소가 두드러진다. 선교사 윌리엄스는 1920년 회의에서 “1919년의 소란으로 인
예산읍교회는 1925년 대대적인 전도 캠페인을 전개하여 모두 85명의 새로운 신자를 얻었다. 또
해서교회들은신앙에대한열심을잃어버렸다.사람들은박해로인해서겁을먹고약해졌다.신자들
1929년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인 최성모 목사가 부임하여 목회하였다. 1923년
은사방으로감시당하면서방해를받고있다”며어려운상황을토로하고있다.하지만그러면서도
신설된감리교의홍성‘지방’은청양,보령,홍성,서산태안,당진의5개구역으로이루어져있었
“많은젊은이들이그사건을통해기독교와교회에대해서새로운관심을갖기시작했다”며낙관
다.1928년의경우홍성지방은25개의교회와9개의기도처,그리고1,292명의교인수를기록했
하고있기는하다.그리고이때부터선교사들은선교전략을한국인의활동을지원하고부흥회에역
다. 홍성지방은 1930년의 특별대전도집회에서 1천여 명의 새신자가 등록하면서 어떤 전기가 찾
점을두는체제로바꾸기시작했다.그결과1922년내포의교회들은20%이상성장하게되었다.예
아왔다. 그리고 1931년부터 “신자 수효라든지 재정 증가라든지 신령 상 은택이 풍부하여 날로
산ㆍ당진ㆍ서산ㆍ홍주의교회들이예배당과사택을새로짓거나구입한것도이해의일이었다.또
진흥상태에 있게” 되었다. 구역 편성도 기존의 5개 구역에서 광천, 삽교, 안면도, 예산 구역이 늘
당진구역의운산리(합덕)와홍성구역의덕산,당진구역의면천에서도예배당을장만하였다.
어나 모두 9개가 되었다. 교회의 수도 1933년 28개(기도처 3), 1934년에는 33개(8)에 2,458명
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목회자의 수 역시 1931년부터 5명에서 8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성 선교
내포지역감리교목회자임명상황(1923-1930)
사 한나 샤프(Hanna Scharpff, 쇄읍)는 1926년 홍성지방과 인연을 맺은 이래 1939년 미국으로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돌아갈때까지이지방의여성선교와순회전도그리고유치원의운영에힘을쏟은당대홍성을대
예산
한태유
김병제
조종범
최성모
심명섭
표하는선교사였다.
보령
이창권
이종권
이종권
이장한
이장한
안성호
안성호
안성호
1925년의 연회록에서 이미 간파하고 있듯이 홍성은 내포의 대표적인 구역으로서, 이미 1922년
홍성
한창섭
한창섭
한창섭
임진국
임진국
방기순
김병제
김병제
부터 1940년까지 지방회와 사경회 등 굵직한 모임들이 거의 매년 홍성읍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광천
한선호
이 교회는 제직들의 열심과 새벽기도 그리고 청년들의 열성적인 전도 등 짜임새있는 기성교회의
서산·태안
하순호
이장한
이장한
이종권
이종권
이종권
이종권
이종권
당진
이장한
이근범
조근영
이종권
이종권
이종권
이종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인근의 팔괘리와 신곡리의 기도소는 홍성읍교회의 청년들에 의해 개
삽교
조종범
조종범
척된곳으로1931년당시그두곳은벌써50-60명,70-80명이모이고있었다.홍성읍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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