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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문화원
문화의 향기를 담아내는 소담옹기
[2] 효자 강이기 <姜履箕>
세 손가락 베어 아버지 병간호
조선 말기에 인주면 도흥리에서 살았던 효자다. 가문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효자였
던 창암 강봉수(姜鳳壽)의 9세손이다. 다른 이름인 자(字)는 사명(士明)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백일 동안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위중한 지경이 되었을 때 차례로 세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흘려
넣어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통함이 심하여 뼈만 남을 정도
로 수척해지면서도 3년 동안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를 했다.
그의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져서 1859년(철종 10)에 그에게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또한 그는 장예원 판결사(정3품)라는 직책에 추증되었다. 우리 고장 출신의 대학자인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悔) 선생이 정문이 세워질 때 지은 글(정려기)을 지었다. 인주
면 도흥2리 섬말에 강이기의 효자 정문이 전해진다.
효자 강이기 정려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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