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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나오는 이야기로 증점이 공자에게 자신의 뜻은 子路, 有, 公西華와 다르다고 대
답하였다 하는데, 저 세 사람과 다르다고 말한 것에 비겨도 좋을 것이다. 과연 그
공로는 온 나라를 덮었고 그 이름은 천하에 들렸으니 아아! 위대하시다. 공은 일찍
이 노래하시기를,
「바다에 맹세하매 고기와 용들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매 초목이 아는 도다.」
하였는데 이 글은 읊는 사람마다 눈물짓고 감격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부친의 이름은 정(貞)이니 순충적덕(純忠積德) 병의보조공신(秉義補祚功臣) 대광보
국승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좌의정(議政府左議政) 겸영경연사(兼領經筵
事)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을 증직하였다.
조부의 이름은 백록(百祿)이니 선교랑(宣敎郞) 평시서봉사(平市暑奉事)인데 가선대
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겸동지의금부사(兼同知義禁府使)를 증직하였다.
증조부의 이름은 거(
)니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요, 어머니는 정
경부인(貞敬夫人)을 증직 받은 초계(草溪) 변(卞)씨이다.
공은 보성군수(寶成郡守) 방진(方震)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세 아들과 한 딸을 낳았
다. 큰아들은 현감(縣監) 회(
)요, 둘째아들은 정랑(正郞) 예(
)요, 막내아들의 이
름은 면(
)으로 공이 자기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사랑하였다. 임진(壬辰)년에 어머
님을 모시고 해변에서 피란하다가 적을 만나 혼자 싸우다가 죽었다. 나이 십 칠세였
다. 따님은 선비 홍비(洪
)에게 시집갔다.
)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맏아들은 참봉(參奉) 지백(之白)이며 둘째는
지석(之晳)이요, 딸은 윤헌징(尹獻徵)에게 시집갔다. 그리고 예(
)는 자식이 없어
지석(之晳)으로서 양자를 삼았으며, 사위 홍비(洪
)는 네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는
데 큰 아들은 우태(宇泰)요, 둘째는 현감(縣監) 우기(宇紀)니 비명을 청하러 온 이가
곧 이 사람이며 셋째는 우형(宇逈)이요, 넷째는 진하(振夏)이다. 딸은 윤수경(尹守
慶)에게 시집갔다. 지백(之白)은 겨우 낮은 벼슬밖에 못하고 자식이 없어 지석(之晳)
의 맏아들 광윤(光胤)을 양아들로 삼았다. 지석(之晳)은 두 번 장가들어 아들 여섯과
딸 하나를 낳았으나 아직 모두 어리니 후손이 어찌 이리 번성하지 못할까. 반드시
뒷날에 크게 되려나 보다.
노래하기를,
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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