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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산 : 공세지 남쪽에 있는 산. 상봉에 바위가 갓 모양으로 되었음
당 재 : 공세지 남쪽에 있는 산
동막재 : 무니골 너머에 있는 산. 미륵이 있음
공세들 : 공세리 앞에 있는 너른 들.
신원릿들 : 신원리에 있는 들.
무니골 : 천등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공기바위 : 당재 서북쪽 기슭에 있는 바위 .모양이 공기와 같음.
무당바위 : 당재 너머에 있는 바위 바위가 넓은데 무당이 춤추다가 떨어져 죽었다고함.
쉰길바위 : 갓바산에 있는 바위. 높이 50길이 정도 됨.
남문거리 : 공세창성남문 밖에 있는 거리.
밤점거리 : 서강과 신성리 사이에 있는거리. 밤파는 집이 있었음.
비석거리 : 공세창성 남문 밖에 있는 길. 삼도 해운 판관 장차주, 한진기, 진휴, 이동근, 이선
만과 현감 이석희, 오경선과 영의정 김좌근 군수 이석구 들의 불망비가 있음.
침해당터 : 공세창 북쪽 높은 돈대에 있는 침해당의 터. 부호 성 시망이 세웠는데 현재 천
주 성당이 되었음.
서강 저수지터 : 서강 남쪽에 있는 저수지.
1944년 8월에 준공 되었으나 현재 마을이 형성 되었음.
돌뿌리 : 공세창성 북쪽에 내민 돌부리 전에는 이것이 선창이 되었음.
서강원논 : 서강 앞에 있는 논 . 새로뚝을 막고 개척 하였음.
공세리 미륵불 : 천등말 남쪽 무니골 밭 한 가운데에 있는 미륵 높이가 3m 가량되는 미륵
상임. 조각이 희미함.
공세창성 : 공세지에 있는 공세창성. 이조때 아산, 서산, 하산, 연산, 임천, 정산, 공주, 홍주,
연기, 덕산, 서천, 직산, 부여, 남포, 예산, 당진, 평택, 온양, 청주, 문의, 회덕, 진잠, 옥천, 회
인등 40 고을의 조세를 받아 쌓았음 중종 18년(1523)에 창고 80간을 지었는데 고종때 폐지
가 되고 현재 천주성당을 비롯하여 민가가 들어섰고 성벽은 동남쪽에 남았는데 문화재로 지
정 되었음.
서강다리 : 서강에 있는 다리.
돌뿌리 : 공세창 성북쪽에 내민 돌뿌리이다. 전에는 이것이 선창이었다.
7)
전설 및 유적
천주교회
조선시대 조새미를 보관하던 창고인 조창이 있던 자리이다. 조창은 수송이 편리한 수로 연
변에 설치 했는데, 신증동국 여지승람 아산현 창고조에는 이곳에 중종 18년 80칸의 창고를
짓고 아산, 한산 연산, 당진등 인근 40개 고을의 세곡을 거두어 보관 하였다가 아산만의 물
길을 이용해 60척의 조선운으로 서울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한다. 이러한 조창은 영조 38년
에 충청도 해운판이 폐지되면서 기능이 약화되었다가 19세기에 이르러 없어졌다는 데 지금
도 석축의 일부가 남아있다. 또한 이곳은 편리한 해운교통 때문에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뿌
리를 내리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는데, 천주교 박해 당시 이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유입되었고, 포교활동을 하였으며 1866년 대원군의 병인박해 때는 갈매리에 거주하는 박익
서, 박원서, 박의서등 천주교 신자 11명이 수원 감영에 끌려가 참수를 당하기도 하는 등 파
란 만장한 천주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1895년 도내에서는 최초로 천주교회 본당이 창
설되면서 초대 성일론(에밀리오) 신부가 부임하여 포교 활동을 하다가 1922년 군내 최초의
외국 건축양식인 고딕식 건물로 현 성당을 준공하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산만
삼국유사에 동명왕 주몽의 아들 비류가 고구려에서 남아 최초로 도착하여 정착하였던 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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