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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언제 어떤 이유로 송악면 강장리에 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시기는 대략 병자호란(1636~37)
을 전후로 추정하며 어머니가 아산 출신인 것으로 미루어 외가 쪽과의 인연으로 아산시 지역에 오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처음 자리 잡았던 곳은 강장리 무태골 지역이었다. 그는 후손들에게‘벼슬을 하
지 말라’
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兪氏)이며 부사 유희회(兪希會)의 딸이다. 이정장은 외아들 익현(益顯, ?~?)
만을 두었다. 자가 명중(明中)인 통덕랑 이익현은 사창(師昌), 항창(恒昌), 이창( 昌) 등 세 아들을 두
었으며 이후 점차 손이 널리 퍼지게 된다.
이정장과 그의 자손들 묘소는 송악면 강장리에 있다. 후손들은 송악면 강장리를 근거지로 하고 온
양 서울 부산 등 각지에서 살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115] 우봉이씨 이종직
| 李宗直
<1563년(명종18년)~1651년(효종2년)>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우봉이씨(牛峯李氏) 14세이며 참판공파(參判公派) 음봉면 신정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생원시에 급제하고 별천(別薦)으로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를 지낸 이필(李
)이다.
이종직의 자(字)는 경숙(敬叔)이며 박사암(朴思庵)의 문인(門人)이다.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을 지
냈으며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총관(摠管)에 증
직되었다. 부인은 광주이씨(廣州李氏)로 부사정(副司正) 이유정(李惟精)의 딸이다. 묘는 아산시 음봉
면 산정리(서당골)에 있다. 음력 10월 8일에 제사를 지낸다. 후손은 대구, 온양, 평택, 신창, 둔포 등
지에 산다.
[116] 고성이씨 이지호
| 李之
<1610년(광해군2년)~1690년(숙종16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고성이씨(固城李氏) 19세(世)이며 도촌공파(桃村公派) 아산시 지역, 탕정면
갈산리 입향조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29세(世) 이홍렬(李弘烈, 70세)의 10대조가 된다.
진사로서 형조좌랑과 해남현감을 역임한 이광택(李光澤)의 증손자이고 생원으로 예빈시 별좌를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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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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