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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리 비>
<효부 양주 조씨 정려 현판 일부>
[65] 조이숙
趙爾
<1616(광해군 8년) ~ 1660(현종 1년)>
조선 후기의 문신·효자이다. 본관은 양주
(楊洲)로 온양 지방의 학자인 참봉 상우(相
禹)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姜)
씨로 첨지중추부사 죽창 주( )의 큰딸이며
6남 2녀 중 셋째아들이다. 부인은 창녕(昌寧)
조(曺)씨 옥(沃)의 딸이다. 자는 경휘(景 )이
며 호는 달봉(達峰)이다. 효자였던 아버지를
본받아 효성이 지극하고 충성심이 강했기에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3년간 채식만 하며
슬퍼하여 병을 얻기도 했다. 1648년(인조
26)예빈시참봉에 제수되고, 효종 초에 신독
<조이숙의 묘>
재 김집(金集)의 천거로 전설사별검(典設司
別檢)에 임용된 뒤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51년(효종 2)부터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조지서(造紙署)별제·귀후서(歸厚署)별제·장예원사평·
호조좌랑·정랑·정읍현감 등을 역임하고 회덕현감에 임명되었는데 재임 중에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그
를 기리며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몰세불망비(沒世不忘碑)가 세워졌다. 그 60년 뒤
에 충청도 유림 대표 김석대 등의 상소로 철비(鐵碑)도 세워졌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1665년(현종 6)
에 효행으로 좌승지에 증직되었고 아버지 상우(相禹)와 함께 정려가 내려져 온양 장존리에 세워졌다. 이
후 온양의 온천동 산18번지로 옮겼다가 2004년에 아파트 건설로 모두 공주 유구로 이전되었다. 묘소는
송악면 수곡리 산 125-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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