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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 비세 더욱 강승하였다 하여도 원세개(袁世凱) 및 이홍장(李鴻
도착하였음
)의 급전과 아울러 일본군(日本軍)의 인천상륙 등의 사정으로 7월 10일까
. 후 다시 일청교섭 및 한정의 의도 청국에 불리한 것
지 공주에 주둔하였음
10일 오전 공주를
을 보고 아산에 주둔한 병을 그 본국으로 철수시키고자
떠나 아산으로 돌아오지만 드디어 철수하는 일은 중지되어 牙山 부근에 집
. 때마침 영 로의 거중 조정이 있었다. 또한 이홍장도 일
합 주둔하게 되었다
본군의 준비 충실함을 알고 청부터 전론을 벌릴 것을 좋아하지 않고 철수하
고자 했다
(葉)은 의기왕성한 것이 있어서 일본군 무서울 것 없다고 여기
그러나 엽
고 수원으로 진격하여 일본군과 대하고자 원하고 내외 실정을 보고 아직 아
. 그리고 사태가 더욱 급하게 돼 牙山에 있는 淸
산에 주둔하기로 결정했다
. 북당(北塘), 호대(芦臺), 천
兵의 병력은 더욱 증원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天津)의 각지에서 7월 19일 파견 증병하기로 결정함.
1. 영선(英船). 비경 애인 양호(飛鯨 愛仁 兩?)에 승선한자. 1,300명
2. 동고승호(同高陞?)에 의한 병 1,200, 포12문(혹은 포 14문, 합계 병
2,500명, 포12문)
(濟遠), 위원(威遠), 광을(廣乙)의 세 함정은 7월 21일 태고를 출
군함 제원
(飛鯨), 애인(愛仁), 량호(兩?)를 호송하여 23일 아산만에 들어
발하는 비경
24日 백석포(白石浦)에 상륙(上陸)하였다. (우리 군함 武藏(무사시)
와 다음
는 이 상황을 정찰하였다
7월 23일 오후 태고(太沽)를 출발한 고승호(高陞?)는 도중에 조강
그러나
(操江?)를 만나 25일 아산 근해에 도착하였다. 때마침 제원 광을(濟遠 廣
)의 두 함정은 우리 군함에 발포하여 어이없게 개전하게 되었다. 불행이
(浪連) 때문에 고승호(高陞?)는 격침되었다. 겨우 독일인
도 우리 군함 랑연
“한넥켄” 이하 16여명이 쇼바이워 ― 루도에 표착한 이외는 바다 밑 고혼이
. 즉 조선반도에 있어서 엽(葉)이 파악한 병력은
되었다
4,165명 포 8문
기타 마필이 있는 실정임
7月 21日 원세개(袁世凱)대리 당소의(唐紹儀)는 경성에서 엽(葉)에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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