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8페이지

106페이지 본문시작

이고 다른 하나는 여관 입구 옆에 있는 영괴대비 로
"
"
2
되고 있습니다
신정비
신정비는 지금으로부터
년전 이조 제 대 왕 세조가 이곳에 머물었을 때 정원에서 맑
470
7
은 물이 솟아올라와 이곳을 파보니 매우 차고 맛이 좋은 물이 마구 넘쳐 나왔다고 합니다
온천의 바로 옆에서 착 맛이 단 정수가 솟아 나온 것은 나라의 길조라고해서 전
에서 하표
가 올렸다고 합니다
황실에 올리는 축하의 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비각을 세운 것입니다 비면은 아깝게도 지금은 대부분 마멸
됐지만 아래와 같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역사서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천순
이 충청도 지역을 보살피고 속리산 복천사로 행차하
8
2
…!?5Œ
여 혜각존자를 알현하고 이듬해
온천군의 온양으로 거처를 옮기셨는바
3
4
일에 갑자기 샘물이 솟아올라 정원까지 흘러 들어 왔다
세조대왕은 이를 괴이히 여겨 샘을 파 보니 더욱 세차게 솟아올랐다 그 물은 눈같이 차
고 거울같이 맑고 그 맛이 감미로움은 산초열매처럼 향기로웠다
호종하던 재상
게 나누어 먹게 하니 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랐다 생간컨대 옛날에는 이러한 샘이
없었으나 지금은 존재하는 바 온천의 탕은 따뜻하고 천
은 차갑다
상당히 좋은 길조라 하여 표
를 헌상하여 경사스러운 일이라 칭송하였으며 신천
이라고 불렀다 신정관을 건설할 때나 온천 굴착의 공사때도 지하
척으로 하고 겨우
15
3
을 간격으로 하나는 냉전 하나는 온천이 상접하여 용출하여 만나 비문이 주장하는 말이 과
장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영 괴 대
영괴대비각은 여관입구 정원에 우거져 있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 뒤쪽에 세워져 있습
니다 이것은 장헌세자가 온천에 오셨을 때 여기서 활을 쏘고 놀았습니다 그 활쏘던 장소
를 표시하여 두기 위해 흙을 방형으로 쌓아 올린 대에 느티나무를
2
괴대라 칭하고 그리고 나서
년이 경과하여 쇠퇴하여 재건할 때 함께 비를 세워 비에는
35
그때의 왕이 지은 글을 새겼던 것이 이 비인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비는
2
온 천 신
온천관의 입구로부터 오른쪽의 여관입구로 돌아서는 모퉁이에 주황색 담을 앞으로하여 가
운데 영석 영목이 있습니다 참배자는 야반
시경에 참배합니다 자식을 얻으로 온 사람
12
부부가 병있는 사람은 단신참배를 대석에 촉을 밝히고 영석에 제주를 부어 기도합니다 이
신에 대한 부락의 제사는 종래
3
1
의 이름아래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 〕
관외설비
4
신 정 호
관의 서남쪽 약
쯤에 있습니다 간이 건설한 자동차도로가 통해 있어 자동차로
2km
10
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겨울 이외에는 정기버스도 운행하고 있습니다 신정호는 길이
44
→〔
거리의 단위
정은
면적은 약
정 정도의 커다란 호수로 이를 당사에서
60
100
수중누각 유람선 등의 설비를 하여 유람 피서 고기잡이 등에 활당하고 있읍니
수중누각은 호수가운데에 돌출한 노란
평 정도의 크기로 된 누각으로 이를 환벽루라고
60
합니다 유람선에는 모타보트 보트 지붕이 있는 놀이배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호수안에 서식하는 어류중 가장 많은 것은 붕어 피라미 잉어이고 그 중에서도 붕어는
7
8
을 줍니다
또 이곳의 붕어는 매우 맛이 좋아서 신정관에서는 오랫동안 식단에 곁들여 호
평을 받고 있습니다
삼 중 산
삼중산은 신정관의 남쪽
3

10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