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6페이지

103페이지 본문시작

어디 그뿐인가.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처지보다는 낫다는 읊
조림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허균의 평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서글프고 불우한
사람의 마음을 읊은 시인 것이다.
6) 허균의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과 손곡집(蓀谷集)
허균은 1611년에 자신의 문집 ‘성소부부고’를 편집했는데, 이 문집 8권속에 이
달의 일생을 전기문 형태로 서술한 ‘손곡산인전’이 실려있다.
이 글 속에는
첫째, 이달의 가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가 쌍매당 이첨의 후손이며 어머니
가 천인이라는 사실과 원주 손곡에 살았던 내용을 기록하였다.
둘째, 이달은 평소에 독서량이 많았고 많은 글을 지었으며, 한리학관이 되었지만
이마저도 버렸다고 기록하였다.
셋째, 박순의 문하생으로서 고죽 최경창·옥봉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활동
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어느 날 박순의 충고를 듣고 5년동안 두문불출하며 치열하
게 노력하여 당시에서는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글을 쓰게 되었다는 내
용을 기록하였다.
넷째, 이달은 용모가 아름답지 못하고 성품도 호탕하고 예의를 잘 지키지 않아
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그의 시를 좋아하는 몇사람을 제외
하고는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죽음에까지 이르도록 하기도 했다고 기록하였다.
다섯째, 이달은 평생동안 떠돌아다니며 글만 썼으며, 삶은 곤궁했지만 불후의 명
작을 남겼다고 기록하였다.
(1) 손곡산인전 전문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자는 익지(益之)로,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이
다. 그는 어머니가 천인이어서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원주의 손곡(蓀谷)에 살면서 자
신의 호(號)로 하였다.
달(達)은 젊은 시절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한리학관(漢吏學
103
홍주 향토문화 회원 광장

103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