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6페이지

105페이지 본문시작



禮山의
新起高樓壓海頭 새로세운높은누각바다위를앞도하여
登臨五月爽如秋 올아보고내려보니무더운여름에도시원하기가을같네.
鵬翔萬里扶搖壯 붕새가만리를나래하니온하늘이장대하고
鼇戴三山?渺浮 자라가삼신산을이었으니온지구가바다위에떠있는듯
斷岸北來當檻盡 끊어진언덕은북에서내려왔으니영루에난간을당하여다하였고,
長川東向抱城流 기나긴냇물은동으로향하는데성벽을안고흘러간다.
將軍出坐軍容整 장군이나와앉았으니군사들의군기가엄정하고
欲效愚忠抒國愁 나의충성을나라근심없애는데받치고자하네.
라고하여삼척영누에계하였다.
그후내직으로돌아와금군장이되었으나친상을당하여사직하였다.복을마치고경원부사
를제수받았으나친병(親病)으로부임치못하였다.1736년(영조12년)칠곡부사가되어자비
로야은일고(?隱逸槁)[고려말기야은전녹생의시문집]을간행하였고1741년(영조17년)
삼화방어사(평남용강)로나갔다.그때전임군수가연이어3명이나죽어부임하는자가없었
으나부임하여민심을가라앉혔다.
1743년(영조19년)무산부사,1745년(영조21년)창원부사가되었다가1747년(영조23년)
전라우수사로발탁되었으며부임지에서권세를믿고방종하여규율을범하는자를잡아다가
곤장을때리고,군?현에서위법하는수령들을장계를올려파직당하도록하니남도연안에우
수사의위풍(威風)이란말이생겼다.
1749년(영조25년)죽산부사로나갔으며,부임지에서창고를지을때손수재목을들어권면
(勸勉)하는모범을보이니관민이모두합심하여큰창고를짧은기간내에지어노적하는폐
단을시정하였다.
1752년경상좌병사에임명되었으나부임치못하였고같은해여주목사에임명되었으나김포
에 도적떼가 일어나자 조정에서 김포군수를 파직하고 함께 겸직토록 하여 먼저 부임하였다.
그러나다음해인1753년(영조29년)11월7일에결성리제(結成里第)에서고종(考終)하니향
년54세였다.
묘는홍성군은하면에있었는데지난2009년4월17일에예산군덕산면사천리덕숭산주봉
아래辛좌원에이장하였다.그리고석천영정과한유도는2008년4월1일에홍성군구항면내
현리소재장충영각에백씨자천공영정과함께봉안하고매년4월넷째주토요일에향사한
다.
105

10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