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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관직을 쌓아 부제학에 이르렀는데, 중간에 외직으로 나간 것은 이조정부
랑과 장악정일 뿐이었다. 악정에 임명된 것은 음률을 알았기 때문이었고, 또 호
148)
149)

에서 사가독서
하면서 시문으로 후일을 미리 기약했던 것은 참으로 멀
고 큰 일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쫓겨나고 배척을 당한 데다 그 목숨마저 빼앗겼
으니옛날에말한,사람이꺼린것이고하늘도꺼린일이겠다.
공의 글씨는 깊이 위진(魏晉)시대의 필법을 얻었으니, 지금 글씨를 배우는
사람들이 보고 베끼기를 그치지 않고있다. 글씨를 평하는 사람들은 혹 그를 두
150)
고힘차지만맹렬하지는않다고말하고,강한
은맹렬하지만힘차지는않다고
하면서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하니 또 어떻게 정론을 얻을 수 있겠는가? 시에
는 완연히 당시의 풍골이 있어 공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져 흐름이 끊이지
않아 이를 확대하여 크게 했다면 이미 이룬 업적이 어찌 여기서 멈췄겠는가?
151)
시첩은주부
조석대가가지고있던것이다.
나는 조맹부, 왕희지, 저수량 등 여러 사람들은 모두 행실은 전하지 않고 다
만작품만남아있는데,후세사람으로공의서법만보고시라면오히려아껴감
상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하물며 공은 깨끗하기 그지없는 명신으로 재주를 다
시 겸해 갖추었으니, 이시첩과 같은 것은 보물로 보관하는 것이 그 어떠해야 하
겠는가?조군(조석대)에게말하고다시마음에서느끼는바를적어돌려보낸다.
152)
만력임인년(1602년)단양일(단오날)에후학해평윤근수
가짓노라.
148)호당: 독서당의다른이름문관중에문학에뛰어난사람에게휴가를주어오로지학업을닦게하던
서재.
149)사가독서: 조선시대 때 젊고 유능한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힘쓰도록 한제도. 대체로 6인
내외가뽑혔다.
150)강한:1455년~?조선초기의서예가.자는종지,호는금재본관은진주함양의구천서원에제향
되었다.
151)주부: 조선시대의 관직, 관아에 설치되었던 종6품직 각 아문의 문서, 부적을 주관하는 임무를 맡
았다.
152)윤근수: 1537~1616년.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자고, 호는 월정, 시호는 문정이다.
1588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1589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종계변무의 공으로 해평부원
군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문안사와 주청사 등으로 명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며 국난극복에 힘
썼다.문장과글씨에뛰어났고,글씨는영화체(永和體)로칭송이자자했다.
2장_6.자암의시첩에쓰다(윤근수)│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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