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6페이지

104페이지 본문시작



禮山의
전일상(田日祥)(1700~1753)
조선후기의무신으로자는희중(羲仲),호는석천(石泉),본관은담
양(潭陽)이다.전일상이예산의인물로조명된것은그의유품인영
정및한유도가1979년12월예산문화원주관으로서울에서유묵전
시회를열던중당시중앙일보문화부장이던이종석기자에게취재
되면서그가치를인정받아충청남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제127
호)로 지정되어 현재 그의 7세손인 전용국(田溶國)씨의 집(고덕면
호음리22)에보존되어있기때문이다.
석천은숙종26년2월12일홍성에서출생하였고,어려서부터스스
로장수가되어군진(軍陣)의놀이를좋아하였다.1722년(경종2년)
에무과에2등으로뽑힌후선전관으로배명(拜命)받은지두달만
석천 전일상 영정
에 춘당대내시(春塘臺內試)에 특지(特旨)로 절충장군에 승진되었
다.이어고령첨사로근무하다수어천총(守禦千摠)이되고1726년(영조2년)단천부사가되
었다.
1728년(영조4년)나주영장으로부임하였는데충청도청주에서이인좌가난을일으켰다가
진압된 후이기 때문에 호남지역도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적들이 횡행하여 민심이 흉흉하였
다.
석천은도적들을모두소탕하고마지막으로남은도적괴수까지잡아민심을가라앉혔다.다
시 중앙으로 돌아왔으나 곧 삼척영장으로 나갔다. 이는 영장이란 직책이 지방군직이었으나
현종때부터도적을잡는토포사를겸직시켜석천이나주영장시절도적을잘다스린명성이
있었기때문이다.삼척영장시절에는군정(軍政)의일로장계를올려부사를파직당하도록하
였다.
삼척영장으로재직할당시군진의축성과다수의공공건물을건축하면서백성들의힘을번
거롭게하지않고큰돌에운반하기어려운것들은직접자신이운치하여종용한가운데일신
하게완축하였다.그공로를도신이형좌가국왕께아뢰어왕으로부터특별히좋은말한필을
하사받았다.(하사한유서와말그림이종가에전해지고있음)삼천진영의영루를신건하고
하사마를받은후題陟州營樓(제척주영루)라는제목하에詩一律을술회하니,시문에내용은
다음과같다.
104

10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