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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도 또한 온전할 수 없었고 다만 옛 터만 남게 되었다. 사계 공께서 손질하고
새롭게 하여, 그 현판을 내걸기를 ‘양성당’이라고 했다. ‘양성(養性)’이라는 것은
바로 축적하고 힘써서 늙어서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말하니, 그러한 까닭에 이렇게
이름 짓고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내가 변방에서 벼슬을 맡고 있을 때 사계 공께서
거주하던 곳과는 2천 여리나 되었다. 사계 공께서 편지를 내게 보내어, 정자의 위
아래와 앞 뒤에 산이 있고 물이 있으며 샘물이 흐르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다는
등 모든 볼 만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기문(記文)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아!
서로 헤어진 지 오래되고 서로 떨어진 거리가 아득하여, 사계 선생께서는 내가 모자람
을 근심하며 해를 보내고 아침부터 저녁이 다하도록 문장을 짓는데 있어서 아무
뜻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계 공은 내가 받들고 따르는 분이며,
성(性)을 기른다는 ‘양성(養性)’은 내가 뜻한 바이다. 산과 골짜기, 물과 돌로 이루어
진 경치는 내가 그 사이로 훌쩍 떠나보고 싶어 하지만 이제껏 이루지 못한 것이다.
마음에 느낌이 없을 수 없으며 가슴에 감동이 없을 수 없어서, 병을 참고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앉아서 붓 가는 대로 써서 드리니 문장이랄 것도 없으며 생각한
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개 사람들 가운데 성(性)이 없는 사람은 없으나 그것을 기르는 데 뜻을 두는
사람은 드물다. 비록 혹시 성(性)을 기르는 방법을 대충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잘
기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전혀 없다. 사계 공께서는 어려서부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의리에 젖고 근본을 기른 지 여러 해 되었으니
성(性)을 기르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하겠다. 성(性)을 기르는
노력 또한 두텁다 할 것이니, 고요할 때에는 성을 보존하여 기르고 의지가 발동할
때에는 성을 살피면서 기른다. 부모를 섬길 때에는 이를 돌아보며 그 정성을 다하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이를 돌아보며 그 힘을 다한다. 말을 꺼내어 그것이 인륜에
어긋나지 않는 것도 성(性)을 기른 것이요, 사물에 응하여 그 이치에 합당함을 찾는
것도 성을 기른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마음에 차지 않아서 먹을 때나 쉴 때에나
혹시 태만할까 두려워하니, 모든 눈이 가는 곳은 반드시 주의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정자는 노닐며 잔치를 베푸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지었으니 진실로 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보는 곳, 듣는 곳, 앉아 있는 곳, 누워 있는 곳이 어찌 성(性)을
기르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요한 산을 바라보면서는 우리 마음의
본체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까닭을 생각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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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지역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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