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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오(李奎五, 1776~1832)이고 어머니는 양천 허씨(陽川許氏)이며 아들 둘을 두었다. 선조들은 아
버지까지 여러 대에 걸쳐 천안 북면에서 살았다.
이의재의 자(字)는 치오(致五)이고 부인은 우봉이씨(牛峰李氏)로 이시배(李時培)의 딸(1808~1852)
이다. 그가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약 190년 전의 일이며 매골이 우봉이씨의 세거지인 점으로 보아
처가 마을에 와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먼저 들어와 자리 잡은 뒤에 그의 형인 이극재
(李克載)도 이어서 매골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들 셋을 두었으며 이후 인근 지역에 터를 잡
고 후손이 이어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110] 전주이씨 이의호
| 李義浩
<1777년(정조1년)~1836년(헌종2년) >
조선 후기의 은일(隱逸)이며 세종의 다섯째 별자(別子-서자)인 광평군(廣平君) 이여(李璵)의 13세손
이며 전주이씨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입향조이다. 통덕랑 이언징(李彦徵)의 증손이고 이응현(李膺顯)
의 손자이며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이호중(李昊中)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광운(金光運)
의 딸이고 부인은 초계정씨(草溪鄭氏) 정진황(鄭鎭璜)의 딸이다.
이의호의 자는 사성(士性) 호는 화암(華菴)이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순후하고 효행이 탁이(卓異)했
다. 충북 진천 백곡(栢谷)에서 출생했는데 1803년에 분가하여 천안 직산에 살다가 1812년(순조 12)
에 아산 강청리로 들어와 정착했다. 약 200년 전의 일이다.
-이의호의 묘와 아들 이태연의 효자 정려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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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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