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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692년(숙종 18)에 강민(剛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704년(숙종 30)에
충신 정려가 내려졌다. 1727년(영조 3)에 현충사(顯忠祠-1706년 건립)에 추가 배향되었다. 묘소는 경기
도 용인시 고기동에 있다.
[54] 이은빈
李誾彬
< ? ~ ? >
조선 후기의 무신·효자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으로 병사(兵使) 건수(建秀)
의 아들이다. 자는 사질(士質)이다. 순조 대에 선전관으로 무과 급제하여 1827년(순조 27)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1840년(헌종 6)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올랐다. 부친이 병환이 났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금두꺼비
가 약이 된다고 하므로 겨울에 나가서 금두꺼비를 구해서 올렸더니 효험이 있었다. 효행으로 효자 정려를
명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55] 이제빈
李悌彬
<1772(영조 48년) ~ 1837(헌종 3년)>
조선 후기의 무신·효자다. 아산 출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고 충무공 순신(舜臣)의 8세손, 홍무(弘茂)
의 현손(玄孫)이다. 불과 다섯 살의 어린아이 때 토를
달아 책을 읽을 만큼 수재였다. 아버지를 잃은 후에는
가세가 기울어 어머님을 흡족하게 모시지 못함을 항
상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스스로 손가
락을 끊어 피를 드려 반나절이나 더 살아 계시게 했
다. 돌아가신 뒤에는 삼년상의 여묘살이 동안 비가 오
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어머님의 무덤을 살폈다. 30
세 되던 1800년(정조 24)에 무과에 급제하고 1835년
<이제빈 정려현판>
(헌종 1)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올랐으며 66세 때 졸
하였다. 그 효성이 극진하여 세간의 사표(師表)로 삼고자 1840년(헌종 6)에 정려를 내려 현충사에 세웠다.
[56] 이태연
李泰淵
<1799(정조 23년) ~ 1867(고종 4년)>
조선 후기의 학자·효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세종의 다섯째 별자(別子-서자)인 광평군 여(璵)의
14세손이자 전주 이씨 강청리 입향조인 화암(華菴) 의호(義浩)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초계(草溪) 정(鄭)씨
진황(鎭璜)의 딸이며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경주 이씨 중간(重幹)의 딸이다. 자는 성장(聖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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