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44페이지

103페이지 본문시작

천수만의자연환경과삶 ?101
상선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대교천원의 물줄기의 폭
이 좁아 여러 척의 배가 입항할 수 없었기에 분산해서 포구를 개설한 것으로 추
정된다. 1950년대에 하천의 토사가 퇴적되어 내륙까지 배가 진입할 수 없었기
에 귀밀포까지는 중선이 입항할 수 있었으며, 대교도 작은 배만이 드나들었다
고한다.
AB 방조제 건립 이전까지 귀밀포와 덕진포는 여전히 포구로서 역할을 했다.
귀밀포는‘개삼포(開三浦)’라고 불렸다. 이는 대교포구(개일포), 덕지천포구(개이포),
귀밀리 포구(개삼포)로 이름 한데서 유래되었다. 이들 세 개의 포구는 모두 지척
에 위치해 있지만 이들 지역을 걸어서 물건을 팔러 간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
니었기에 해안가의 포구를 중심으로 상거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중 개삼포
인 귀밀포구에는 일제강점기에 휴암리에 거주하던 신열균 씨가 이곳으로 옮겨
와 정미소를 세웠고, 해미, 서산, 음암, 운산 지방에서 벼를 수집해 수 천 석씩
쌓아두고 방아를 찧어서 기선에 실어 군산과 인천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인천
과 서산군이 소통하는 통로로 기능한 것이다. 그러나 1945년 광복 이후 쌀의 반
현재의덕지천동,귀밀리,유계리
개삼포앞에서세갈래물이합수되는곳

103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