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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교동인씨 입향조 인인경(印仁敬, ?~?)의 셋째아들이다.
이홍주 또한 1남 1녀를 두어 손자인 이응룡(李應龍)은 적순부위(迪順副尉)를 지냈다. 이응룡은 준
(峻), 흘(屹), 장(
) 등 3남 2녀를 낳았는데 그 중 차남 이흘(李屹, 1564~1642)은 1606년(선조 39)
병오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종영, 문영, 생영, 창영, 동영, 인영 등 6남1녀를 두어 전의
이씨 집안을 널리 흥하게 하였다.
전의 어천동에 있던 이유의 묘는 탕정면 매곡리로 옮겼다가 30년 전에 가까운 호산4리 성뒤 마을
의 남쪽 성재 줄기 꿀룩재에 묘역을 정비하고 인근 각지의 선조 묘들을 함께 옮겨 모실 때 그곳으로
이장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탕정면 매곡리를 중심으로 호산리, 배방읍 갈매리, 천안, 대전, 서울 등
곳곳으로 퍼져 나가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유의 묘와 종중 묘역 모습-
[109] 한산이씨 이의재
| 李義載
<1801년(순조1년)~1836년(헌종2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한산이씨(韓山李氏) 22세(世)이며 인재공파 아산시 지역, 탕정면 매곡리 입향
조이다. 현재 갈산2리 여술 마을에 거주하는 이천규(李千珪, 80세)씨의 고조부이다.
그는 80세까지 살아서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의 직첩을 받은 이이형(李以馨,
1673~1752)의 현손이고 이해수(李海壽)의 증손이며 이천복(李天馥)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차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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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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