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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전운상(田雲祥)(1694~1760)
1694년(숙종20년)∼1760년(영조36년).조선후기의무신.본
관은 담양(潭陽). 자는 사룡(士龍), 호는 자천(紫泉). 홍주 영장
(營將)시원(始元)의맏아들이다.
1717년(숙종43년)24세에무과에급제한뒤내외직을두루거
쳤다.함경도정평부사로있을때농업을권장하고흉년을당하여
이재민과질병을앓는사람을잘보호하여왕의특별한포상을받
았고,또강원도춘천에재임중에는삼공(蔘貢)의민폐를통감하
고 관비의 절약보조로 보삼고(補蔘庫)를 설치하여 백성의 부담
을 경감하고, 해이된 무비(武備)를 정비하고, 연무청(鍊武廳)을
자천 전운상 영정
신축하여장병을훈련시켜유사시에만전을기하기도하였다.
그는관직에있는동안이원익(李元翼)의거관승묵(居官繩墨)1편을손수써서책상머리에
두고항상읽고외우며공무에전심하였기때문에처결에잘못이없고관찰과판단이공정하
였다.
그의가장두드러진업적은1740년(영조16년)전라좌수사로있을때에수군의특수함정인
해골선(海?船)을건조한것이다.
영조실록에“전라좌수사전운상이해골선을지었는데,몸체가작고,가볍고빨라서바람을두
려워할염려가없다”라고기록되어있을만큼해골선은조선후기에등장한주목할만한군선
이었다.
1746년 경상병사로 있으면서 독륜전차(獨輪戰車)라는 독특한 육전(陸戰)의 전구(戰具)도
제작하여유사시에대비할것을건의하기도하였다.
자천(紫泉)공의詩에曰
“嗟我行年迫七旬何因來坐豆江垠南天回首雲千里北闕懸心月一輪絶塞爲官何異謫胡山隔水
便同隣而今最幸邊無警聖祖威靈服遠人胡天無日不獰風閉戶低頭勉奉公身似老騏??上心
如孤鶴鎖籠中枕邊歸夢行千里夢裏鄕山隔萬重厄運從來難可免人間事事係蒼穹”
아슬프다.내나이70이임박한데/어찌하여두만강가언덕에와있는가?/머리돌려남
쪽하늘을바라보니구름은까마득하고/마음은쓸쓸한관아에있는데둥근달이회포에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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