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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 김견포(金見
)의 딸이다.
그는 세 아들 중 둘째이며,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원(金院)의 딸이다. 그가 언제 왜 신창으로 와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사항은 확인되지 않
는다. 시기는 특별한 근거가 없으므로 그의 생애 중간쯤을 기준으로 1620년경으로 보고 약 390년
전으로 추정한다. 묘는 신창면 궁화리 가곡에 있다.
외아들 명화(明華, 1607~1676)를 두었고 이명화는 종립(宗立), 덕립(德立), 소립(韶立) 등 세 아들
을 두어 그 이후 자손이 많이 늘어 번창하였다. 뒤에 후손들 중 일부가 온양, 탕정, 음봉 지역에까지
퍼졌다.
[108] 전의이씨 이유
| 李宥 < ? ~ ?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전의이씨(全義李氏) 15세(世)이며 대사성공파 아산시 지역 탕정면 매곡2리
신풍터 마을 입향조이다. 선대는 황해도 개성 지역에 오랜 동안 거주하였다. 후손으로 현재 매곡2리
에 거주하는 30세(世) 이장호(李長鎬, 75세)씨의 15대조이다.
이유는 영경운전사(領景雲殿事) 전의부원군(全義府院君) 이사안(李思安)의 현손이고 함길도 경력을
역임한 이좌(李佐)의 증손자이며 부사직을 지내고 좌승지에 추증된 이삼기(李三奇)의 손자이다. 아버
지는 세조 12년(1466)에 문과에 급제한 뒤 한림(예문관 검열)과 사헌부 장령(정4품) 등을 지냈고 좌
승지에 추증된 이인석(李仁錫)이며 어머니는 백천 조씨(白川趙氏)이다.
그가 정확히 언제, 어떤 일로 인하여 이곳으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유의 묘가 선대의
고장인 개성이 아닌 멀리 충청도의 전의에 있었던 점으로 보아 그가 개성에 살다가 온양으로 들어왔
고 근처에 선산이 없어서 전의에 모신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아들인 이홍주부터 3대(代)는 가까운
대추리(배방읍 장재리 지역. 정확하게는 대추리 산너머 천안 쌍용동 지역에 묘가 있었다.)에 묘가 있
기 때문이다. 배방읍 북수리로 들어온 이기(李 )와는 8촌간이며 북수리 쪽이 조금 먼저 들어왔을 것
으로 보인다.
이유는 승사랑(承仕郞)으로 한림원에 재직했으며 부인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 진사 김우(金羽)의
딸이다.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이홍주(李弘澍, ?~?)는 종사랑(從仕郞)에 올랐다. 이홍주의 부인은
교동인씨(喬桐印氏)로 지평 인침(印琛, ?~?)의 딸이다. 인침은 약 600년 전에 탕정면 동산리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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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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