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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신
李藎
< ? ~ 1627(인조 5년)>
조선 후기의 충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아들(서자)이고 훈(薰)의 아우이며 무과
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주부사로 있던 사촌형 완(莞)과 함께 적과 싸우
다가 패하자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그도 완(莞)과 함께 분사(焚死)했다. 1796년(정조 20)에 병조참의(兵曹
參議)로 추증되었다.
[50] 이씨
李氏
< ? ~ ? > -맹흠인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다. 본관은 덕수(德水)로 태수(泰
秀)의 딸이며 신창 맹씨 흠인(欽仁)의 처다. 부군이 죽
던 날부터 물과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주야로 통곡했
다. 산간으로 출빈(出殯)하게 되자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였으나 반드시 빈소 옆에 가서 호곡(呼哭)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집에는 두 살 난 어린 딸이 있어서 밤
새도록 울고 있었으나 돌보지 않고 이와 같이 한 것이
무릇 40일 밤이었으니 마침내 기진하여 빈소 옆에서
목숨이 끊어졌다. 송악면 평촌2리 복구미 마을 입구에
‘열녀이씨지비’
가 있는데 그의 아들 우순(祐淳)의 처
<열녀 이씨의 열녀비>
도 열녀 이씨이기 때문에 둘 중의 한 사람과 관련될 것
으로 추정되지만 확인할 자료를 찾을 수 없다.
[51] 이씨
李氏
< ? ~ ? > -맹우순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이며 본관은 여주(驪州)다. 신창 맹씨 흠인(欽仁)의 아들인 우순(祐淳)의 처다. 부군이
어려서 질병으로 빈사의 지경에 이르자 백방으로 노력하여 병을 치료하려고 하였으나 병이 위급해져 손
톱이 모두 푸르게 되어 어찌할 수 없게 되자 그 부군의 허리띠를 끌러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그 뒤에
부군은 겨우 회생하여 8년 동안 더 살았다.
[52] 이씨
李氏
< ? ~ ? > - 강이덕의 처
조선 후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명순(命純)의 딸이며 학생(學生) 강이덕(姜履德)의 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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