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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가정은 당시 명문귀족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아버지 초당 허엽을 비롯하
여 형인 허봉과 누나인 허난설헌 등 모두가 문장에도 뛰어났다. 특히 허봉은 이달
과 친구이며, 동생인 허균과 허난설헌을 이달의 제자로 맺어주는데 앞장섰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서얼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얼출
신 이달을 자식과 동생의 스승으로 삼은 그들의 생각은 참신하기 이를 데 없다.
허균 집안의 분위기는 시대를 앞서가는 개혁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개혁적인 사
상가 허균과 여류문인 허난설헌이 배출된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허균이 지은 교산억기시(蛟山臆記詩) 서문에는 자신이 손곡 이달에게서 시를 배
웠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젊었을 적에 시를 할 줄 알아서. 이손곡(李蓀谷)에게 이백(李白)을 배웠고 당(唐) 및
한유(韓愈)·소식(蘇軾)을 중씨(仲氏, 허봉을 말함)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난리 속에서 비로
소 두보(杜甫)를 익혀 부질없이 미약한 재주를 익히는데 힘을 쏟은 지도 한 세월이 흘렀
다. 그사이 소득으로 말하면 비록 옛사람의 영역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심정을 읊조리고
물상을 아로새김에 있어서는 마음을 괴롭히고 힘을 쓴 것이 역시 얕지는 않았다. -하략-
5) 허균의 문집 속에 기록된 스승 이달의 모습
허균은 1592년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외가인 강릉으로 피난했었다. 이듬해에
당대의 한시와 시인들을 비판한 『학산초담(鶴山樵談』을 지었다.
학산초담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가 실려있고 허균의 평도 들어있다. 그중에
는 이달의 시도 소개되고 있다. 특히 백성들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 듯이 생
생하게 묘사한 이달의 시가 눈에 띈다. 허균은 이 시들을 소개하면서, 백성들을 다
스리는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 깜짝 놀라고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1) 백성들의 모습을 직접 보듯이 생생한 시(詩)
동산역시(洞山驛詩)*
이웃집 어린 며느린 저녁거리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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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토문화(洪州鄕土文化)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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