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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윤봉오(尹鳳五)(1688~1769)
조선후기의문신으로자는계장(季
章), 호는 석문(石門) 본관은 파평
이다. 참판 비경의 손자, 명운의 아
들이며판서봉구의아우이다.
일찍이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왕세제(후에 영조)를 가까이에서
보필하였고 1725년 영조가 즉위하
자 시직(侍直)이 되었다. 1746년
석문 윤봉오 영정
석문집
유묵
(영조 22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필선(弼善)이되었고부수찬,교리등을역임하였다.이듬해홍천(洪川)현감으로나
갔다가1759년(영조35년)에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대사헌에올랐다.
1763년(영조39년)특진관(特進官),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겸했고,1768년(영조44년)
에사직(司直)을거쳐이듬해에우참찬(右參贊)이되고70세가넘어기로소(耆老所)에들어
갔다.시호는숙간(肅簡)이다.저서로는??석문집(石門集)??8권이있다.
그의형봉구와함께문장에능하였으며명도선생(明道先生)의화상찬(畵像贊)을봉구가,이
천선생(伊川先生)의화상찬을봉오가썼는데모두80세가넘은고령의작품이다.
그는선대부터덕산가야산을소유하여가야동은그들의학문을수양하던곳이었다.지금의
상가리에서내려오는물과,원효봉아래사기점골에서내려오는물이합류되는부근에넓고
깨끗한백석암반이있고바위를거쳐내리는폭포가절경을이루는데이곳이석문담이다.옛
날송시열이취석(醉石)이란두글자를새겼고,김진규가석문담(石門潭)이란석자를각자하
였고윤봉오의아호석문은이곳에서연유한것이다.
그의형봉구의호또한가야동과연관이있는데가야동계곡을흘러내리는산모랭이에있는
기암절경의바위와연못을병계(屛溪)라하였는데그의호도여기에서연유하였다.
봉구·봉오형제의학문적,세업적기반이었던가야산은풍수설에미친대원군의명당터때문
에모두빼앗기고그의묘또한유구로갔으며그의형봉구는봉산면궁평리로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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