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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민은 부민(膚敏), 시민(時敏), 사민(思敏), 덕민(德敏) 등 4형제 중 둘째이며 자는 경이(敬而)이
다.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종사랑 이홍주(李弘澍)의 딸이다. 이홍주는 전의이씨 대사성공파
아산시 지역, 고개 너머 이웃 마을인 매곡2리 신풍터 입향조인 이유(李宥, ?~?)의 장남이다. 이시민
은 혼인으로 인해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이곳 매곡1리 매골로 들어온 것이다.
넷째인 이덕민(李德敏, 1543~1618)은 자가 계도(季道)이고 호는 송파(松坡)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던 은일(隱逸)이었으며 염치읍 서원리에 있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배향되었던 학자이다.
『대동
기문(大東奇聞)』
에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염치읍 백암리에 살았으며 만전(晩全) 홍가신(洪可臣), 송
곡(松谷) 홍익현(洪翼賢)과 함께 교유·강학하였다.
그리고 이덕민의 숙형인 이사민(李思敏, 1541~?)이 근처에 살았다, 이사민은 아산에 거주하였다는
사마방목의 기록, 이덕민의 묘가 음봉면 산동리‘공동골(公東骨) 송파야(松坡野)’
에 있다는 족보 기
록, 이덕민의 호가 송파(松坡)이고 아들 치요(致
堯)의 호가 아주(牙洲-족보에는 牙洲로 되어 있
으나 牙州의 잘못일 것으로 봄)라는 점 등으로
보아 이사민과 이덕민이 나중에는 음봉면 산동
리 지역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본다. 이덕민은
유복자로 태어났고 이사민이 1576년 사마시에
합격한 36세 때에 아산에 거주했다는 것 등으로
보아 둘째인 이시민이 먼저 탕정 매골에 자리 잡
은 뒤 이어서 그의 동생 둘이 가까운 염치와 음
봉 지역에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시민은 아들이 없어서 형 이부민의 둘째 아
들 치각(致慤)을 계자로 들였고 이치각도 외아들
후식(厚植)만을 두었으나 이후식이 득원(得 ),
득구(得龜) 등 두 아들을 낳은 뒤부터 매골을 중
심으로 후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
르고 있다. 이시민의 묘는 마을 뒷산에 있었으
나 1990년에 도고면 농은리 논골에 종중 묘역을
새로 마련하여 용인에 있던 선고의 묘소, 음봉
산동에 있던 동생 이덕민의 묘소 등과 함께 옮겨
-용인이씨 종중 묘역 안내비와 이덕민의 묘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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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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