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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어 아산군지
(마) 순천해상의 싸움
3년(慶長3年) 8월 명선(明鮮)의 수륙군 합쳐 40만이 남하해왔다. 일본
경장
8월 10일에 벌어졌다. 명장진린(明將陳璘)은 순신의 책략을 받
군과 회전은
아들이지 않고 되려 내가 들은 조선인은 겁이 많고 싸우면 꼭 진다고 지금
공의 말을 듣고 그 진실을 알았다
. 무슨 전략을 정해 싸울 필요 있으니 호언장담
나 적을 보길 어린애 같다
500여 척을 이끌고 진군하였다. 격전 수시각 진린은 오른 팔
스스로 앞장서
. 순신 스스로 뱃머리에서
을 맞고 선렬마저 흩어져 패전 직전에 막다뤘다
, 해풍에 휘말
큰 소리로 영을 내려 구원에 힘써 일본 선박에 불을 질렀기에
. 일본군은 퇴각하였
린 맹화는 삽시간에 배를 뒤엎고 불꽃은 해상을 덮었다
지만 싸움에 지친 순신은 추격을 하지 않았다
(바) 순천성의 싸움
(小西行長)이 지킨 순천성(順天城)에 대해 명의 육장류정(陸將劉
소서행장
)은 바다의 이순신. 진린과 핵륙에서 공격했지만 조류의 이용을 놓친 순
40여 척을 불태우고 3척의 배에 의하여
신은 펄에 들어가 진퇴의 때를 잃어
간신히 퇴각하였다
(사) 로량(露梁)의 싸움
3년(慶長3年) 8월 수길(秀吉)이 사망. 일본의 제장은 모두가 귀국을
경장
. 행장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지만, 육지에는 명장 류정, 바다의 이
서둘렀다
순신에게 막혀 철수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薩南)의 명장 도진의홍(島津義弘)은 스스로 수백 척의 병선을 이끌
싸스마
. 순신의 군은 남해의 관음포에 진
고 밤에 조류를 이용하여 구원하러 왔다
. 순신은 야습을 하여 일본선에 불을
린은 곤양의 죽도에 진을 치고 있었다
(明鮮)의 수군도 패하여 관음포
질렀기 때문에 불타는 군선도 많았지만 명선
(觀音浦)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순신은 선두에서 다시 일본
. 싸움은 격렬해서 일본군선이 불탄 것도 50여 척에 이르렀다. 그
군을 쳤다
(義弘 行長)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려 역습으로 나와 의홍
러나 의홍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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