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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 역사읽기
사극
극 속
내시
세 부
부류
여야
야 한
한다
MBC 드라마 <계백>
왼쪽에서 2번째가 의자왕(조재현 분),
3번째가 계백(이서진 분).
중국에서는 늦어도 은나라 때부터 내시(내관?환관) 제도가 발달했다. 이미 고조선 때부터 중국에서는
고자를 환관으로 활용한 것이다. 중국에서 환관 제도가 발달한 것은 궁형(宮 )이란 형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궁형이란 남성성( )을 거세하는 것이다. 이런 형벌을 받은 죄수들이 궁에 들어가 환관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궁형이라 불렸다. 일찍부터 환관 제도가 발달했기에, 고조선 말기에 해당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에서는 수조(
)같은 환관이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
『사기』
의 저자인 사마천도
환관이 되지는 않았지만 궁형을 받은 인물이다. 그가 역사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한국의 경우는 달랐다. 한국에서는 궁형 같은 야만적 형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대 한국에
서는‘내시=고자’
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았다. 내시(內 )는 말 그대로 궐내에서 임금을 시중드는 사람
일 뿐이었다. 일반 남성들이 임금을 보좌했던 것이다. 적어도 고대 한국에서는 그랬다. 『삼국사기』
「직관」편에 내관(內官)이란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은 궁에 설치된 부서 혹은 백제 내신좌평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했다. 적어도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활약하던 시대에 한국의 궁궐에는
고자 출신의 내시, 즉 고자형( ) 내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한국사의 제1기 내시들은
비( )고자형 내시였다.
한국 사료에서 제2기 내시, 즉 고자형 내시가 출현하는 것은 발해?신라로 구성된 남북국 시대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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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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