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8페이지 본문시작

서산의 문화인물
김상정은 강화도 사건이 일어난 해인 고종 12년 (1875년) 9월 충남
예산군 봉산면 마교리에서 출생 했으며, 6.25 동란을 겪은 직후인
1954년 8월 서산군 성연면 고남리에서 타계하였다. 본관은 경주,
자는 명옥(
), 호는 한월당(
)으로 독립운동가이다. 하지만
김상정은 선생은 지역의 독립운동가 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으나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월당의 고조부인 김한록(金
)은 조선후기 기호 학파내 최대의
학술 논쟁였던 호락논쟁의 중심에 서서 호학을 주창한 유학자인
한원진(
)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이다. 이후 이러한 학풍은 홍주
문화권에서 김복한, 이설을 비록 김상정 등 유생들에게 전수되어
19세기 후반 적극적인 위정척사운동 내지는 항일민족운동을 일으키는 사상적
연원이 되었다.
김상정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심히 빈곤하여 스승을 모시고 수학할 형편이 안되었
지만 고조부인 김한록 학문을 계승하여 민족적 위기가 닥침에 따라 척이단의 이념을 실천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망국민이 된 그는 철저한 의리론에 입각한 항일투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1918년에 고종황제의 승하(
) 비보를 듣고 혈서로‘대명의리(
)’네 글자를
기(旗)에 써서 꽂고 대성통곡해 군중을 격동 시켰으며 이로 인해 3.1운동의 유도자가 되었다.
8 |
2011_09

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